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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미생』의 작가 윤태호는 만화 스토리 공부를 어떻게 했는가?

얼마전 『미생』의 작가 윤태호를 만나서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이 기회를 틈타서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몇 가지 물어 보았다. 만화의 이야기를 짜는 솜씨가 남다른데, 어떻게 이야기 공부를 했는지, 마감에 쫓기면서 작품을 하려면 힘들 텐데, 위기 관리 비결이 있는지 등이다. 아래에 따로 소개한다. 전문은 <기획회의> 443호에 실린다.


책만 많이 읽으면 좋은 독자가 될 뿐이다. 작가가 되려면 별도의 공부가 필요하다.     

『미생』의 작가 윤태호는 만화 스토리 공부를 어떻게 했는가?



장은수(이하 장) 

『미생』도 그렇고, 『내부자들』도 그렇고, 윤태호 작가의 작품은 소설로 옮기고 싶을 만큼 이야기가 아주 강렬하다. 특별히 이야기에 신경 쓰는 이유가 있는가?

윤태호(이하 윤)  

이미 지식과 정보는 온갖 곳에 넘쳐난다. 하지만 대부분 백과사전식 정보라서 정보를 접하는 순간을 지나치면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서사가 있어야 기억에 남기 좋다. 


장 

서사에 특별히 신경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문하생으로 있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책만 많이 읽으면 작가가 아니라 그냥 좋은 독자가 될 뿐이다. 작가가 되려면 별도의 공부가 필요하다. 독서할 때 버릇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구해서 읽는 쪽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느낀 점이 있다. ‘작가들이 평생에 쥐고 가는 게 몇 개 되지 않는구나.’ 하는 점이다. 작가마다 다루는 주제는 결국 몇 가지로 축약됐다. 그때부터 내가 창작자로서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를 평생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공부했던 과정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데뷔 첫 작품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때부터 작법 공부를 많이 했다. 창작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책을 사서 부지런히 읽었다.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 중 한 분이었던 최인호 선생님의 ‘시나리오 전집’을 사서 낱낱이 공부했다. 또한 유명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긁어모아서 한 편 한 편 분석하면서 읽기도 했다. 지금은 구하기 쉽지만, 당시만 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파악하기 좋았다. 

추리소설도 많이 읽었다. 추리소설은 작가가 결론을 가지고 있어서, 장면 하나하나를 어떻게 연출했는지 파악하기 좋았다. 


시나리오와 추리소설을 통해서 이야기를 공부했다는 말이 흥미롭다. 듣고 보니 아주 그럴듯하다. 학생들한테 당장 시켜 보고 싶다. 

요즈음에는 DVD를 자주 본다. DVD를 볼 때에는 영화만 보지 않고, 뒤에 나오는 코멘터리를 세밀하게 살펴본다. 한 편 보는 데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 

만화 작가는 영화감독과 아주 비슷한 입장이다. 적절한 대사도 구현해야 하고, 캐릭터에게 연기도 시켜야 한다. 작품 후기를 보면, 이와 관련한 감독의 고민도 나오고 이를 받아들이는 배우의 느낌도 나온다. 촬영할 때 무엇을 신경 썼는지 어떻게 편집했는지 등 만화 작가에게 도움이 될 요소가 풍부하다. 

내 만화는 캐릭터 위주라고 생각한다. 캐릭터를 설정한 후, 그 캐릭터에 집중해서 캐릭터를 전시하는 느낌으로 묘사한다. 관련한 스킬은 딱히 없는 것 같고, 캐릭터를 독자들에게 잘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이 스킬이라면 스킬이다.


이야기를 짜는 과정에서 편집자와 협의하기도 하는가?

윤 

편집자와 친해서 항상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잡지에 연재할 때에는 담당 기자와도 친하게 지낸다. 초본이 나오면 독자 입장에서 다음 스토리 진행을 물어봤다.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가 생각하는 진행과 작가가 생각하는 진행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편집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의 도움이 없다면, 지금까지 잘 해낼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연재를 계속하려면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할 터인데, 작품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멘탈 관리 비결이 있는가. 

기본적으로는 항상 전력을 다해서 작품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멘탈 관리 비결은 따로 없고, 댓글을 열심히 보는 편이다. 『미생』의 경우, 다행히 악플보다는 격려와 응원이 아주 많았다. 악성 댓글로 공황장애에 걸린 작가들도 많지만, 나는 댓글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다. 독자들 반응을 보면서, 작품의 다음 장면을 구상하는 것이다. 물론 편집자의 도움과 격려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연재에서 마감은 분명히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만화가로서 프로가 되려면 연재의 마감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다음 회에서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프로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