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숙의 『우포늪, 걸어서』(목수책방, 2017)는 물과 바람의 언어로 쓰여 있다. 냉정한 과학적 탐구의 언어는 아니다. 차라리 은근한 사랑의 언어라고 부르고 싶다. 우연히 펼친 후 몇 줄 읽다 보니, 마음이 책 속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이어서 고리가 걸리는 느낌이 읽기를 재촉하면서 어느 순간 마지막까지 이르렀다.
“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바람과 햇빛과 조응하면 물풀이 일렁이는 늪가를 부드럽게 간질이고 새들의 발가락을 꼼꼼히 살핀다.”
이런 문장은 사랑스러워 책 속 어딘가에서 한 줄 더 찾아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독자의 머릿속에 공감각을 일으키는 아주 가벼운 시적 문장들.
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 습지다. 저자 손남숙은 근처의 창녕에서 나고 자랐다.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우포늪과 자신을 하나로 이어가는 작업을 해왔다. 풍경을 졸여서 언어로 다지는 애정의 가장 깊은 표현.
읽기와 탐사가 하나로 이어지고, 체험과 상상이 서로를 메아리치는 이런 종류의 책에서는 윤리가 표현을 앞서지 않도록 하는 게 필수다. 표현을 통해 윤리가 만들어지는 기적 없이는 우리는 우포의 크고 작은 생명들에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으리라.
“사지포제방 끝머리에서 산으로 올라가면 잘생긴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오랜 시간 햇빛과 바람에 단련되어 그윽하게 아름다운 나무가 되었다. (중략) 팽나무는 늪의 무대를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 (중략) 가을에는 물안개 굽이치는 것을 한 편의 시처럼 감상하고, 봄에는 가만히 있어도 달떠오는 기운을 초록으로 휘감는다. 봄에는 누구라도 시를 쓴다. 시키지 않아도 줄줄 써내려 간다. 이른 봄 언덕에는 길쭉길쭉한 흰 꽃들이 멋스러운 붓글씨처럼 피어난다. 이름이 산자고인데 우윳빛처럼 밝고 갸름한 꽃잎이 수형이 탄탄한 팽나무와 제법 잘 어울린다. (중략) 팽나무는 매일 늪에서 올라오는 시를 가장 먼저 열어 본다.”
문장의 리듬이 솔직하고 흥겹다. 풍경 자체에 마음을 집중하게 만드는 글이다. 이것은 묘사가 전혀 아니다. 비유를 통해서라도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각의 전체성을 전달해 보려는 고된 싸움의 산물이다. 보라, 바람처럼 도약하는 문장들을.
“늪은 새들이 날갯짓을 하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진흙 아래를 움직여 먹이를 꺼내기 좋게 만든다. 새들이 뛰어가면서 날아가고 날아오면서 발가락을 좍 펼치는 이유를 잘 알기에 그렇다. 늪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새들이 그처럼 자신을 활짝 열고 물에 내려앉을 이유가 없다. 새들이 물을 짚으면서 발휘하는 리듬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음악과도 같다. 우주가 힘차게 새의 두 발끝에서부터 번득이는 물방울들로 끌어올려진다.”
아직 우포늪에 가 본 적이 없다. 가뿐히 책을 읽고 나서 조만간 찾아가서 늪 구석구석을 걷고 싶어졌다. 그래서 읽고 난 책을 아내의 책상에 슬쩍 올려두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서 그렇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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