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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우리는 항상 광장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왔다 갔을 뿐이죠 _ 김민섭, 이민경, 천주희를 만나고 나서



이번호 《기획회의》 특집은 ‘2017년 기대되는 신예 저자들’이다. 작년에 책을 낸 신인들 중에서 주목할 저자를 큐레이션 해서 소개하는 특집이다. 그 앞머리에 『대리사회』(와이즈베리)의 김민섭,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봄알람)의 이민경,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사이행성)의 천주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들이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 세대의 감수성을 솔직하게 담았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작년 말에 ‘올해의 책’으로 여기저기 추천한 책들이었다. 세 사람의 속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사회를 수락한 후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한 후 마음을 다져먹고 정담을 진행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소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의 신년 특집 ‘민주주의는 목소리다’ 첫 회에 다음과 같은 현실 진단이 실려 있다. “‘연대하는 광장’에서 트인 말문은 고립과 경쟁의 개인으로 돌아가자 닫혔다. 삶의 요구를 함께 분출하고 해법을 모색할 ‘작은 광장’이 일상에는 없었다. 배설과 냉소, 뒷담화, 독백만 남았다.” 광장의 민주주의에서 일상의 민주주의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는 이 특집은 소중한 의견을 담고 있지만, 광장의 연대를 특별한 것으로 고립시키는 프레임을 끝내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그러한 프레임에 갇혀 있었고, 앞으로도 쉽게 여기에서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세 사람의 정담을 지켜보면서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허무주의로서, 생각의 방향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보수가 정권을 잡은 지난 10년 동안, 특히 극우가 정권을 잡은 지난 4년 동안, 한국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퇴행의 길을 걸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이 만들어낸 시민사회의 기본 틀이 곳곳에서 압박을 받고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세월호는 붕괴의 중대한 상징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잃었습니다. 장강명의 소설 제목인 ‘한국이 싫어서’는 우리 사회의 기저심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저는 일종의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제 끝장이구나, 어떻게 할까. 방황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반성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겁니다. 각자 흩어져 자기 영역에서 모두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던 겁니다. 그 힘이 광장의 촛불로 켜진 겁니다.


이러한 생각을 품은 까닭은 ‘촛불 이후’를 묻는 질문에 대한 세 사람의 대답 때문이다. 각자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세 사람의 어조는 한결같았다. 


촛불은 우리한테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싸우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연구실에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그러니까 모든 곳에서 우리는 항상 광장에 있었습니다. 이번 촛불집회에는 과거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을 뿐입니다. 모두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을 것이고, 또 어떤 기회가 잡히면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겠죠. 


그렇다. 광장에서 열렸던 민주주의가 일상으로 돌아가서 닫힌 것이 아니다. 그 반대가 진실이다. 광장은 고립된 채 특별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광장은 늘 우리 곁에, 우리 일상의 모든 곳에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광장이 닫히는 게 아니라, 일상의 광장이 모여서 촛불을 들고 세상을 한 차례 크게 밝힌 것이다. 광장의 싸움이 끝나면 모두들 되돌아가 다시 자기가 속한 영역에서 고단한 싸움을 계속하고, 그렇게 천천히 세상을 더 너른 광장으로 바꾸어 갈 것이다. ‘촛불 이후’와 ‘촛불 이전’을 나누는, 그로부터 거대한 변화가 있을 것처럼 기대하는 프레임으로는 지금의 변화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우리는 또 다시 좌절할 것이고, 우리는 또 다시 허무주의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계속 싸울 것이고, 누군가는 계속 광장에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촛불에 대한 모든 논의는 궁극적으로 ‘자괴감’을 불러올 뿐이다. 정담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슴이 잠깐 두근거렸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는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시민사회 곳곳은 이미 해방되어 있었고, 촛불을 든 광장은 시민사회가 품었던 해방된 상식에 정치권력이 굴복하기를 물리적으로 강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상식을 억압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완전히 경멸당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 교화를 요청받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