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에 『황제들의 당 제국사』(푸른역사, 2016)를 서평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역사와 가장 치열하게 얽혔던 이 거대한 제국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여다보는, 흥미진진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임사영, 『황제들의 당 제국사』(푸른역사, 2016)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까닭에 당나라 이름은 어릴 때부터 익숙하다. 안시성 전투의 장려함, 백마강 전투의 비통함, 평양성 전투의 애절함 등이 마음에 이유 있는 증오를 일으킨다. 하지만 동양 쪽 공부를 할수록 당나라는 ‘문명의 정화’로서 동경을 가져온다.
이백과 두보의 빼어난 시가 있고, 유종원과 한유의 견고한 문장이 있다. 동아시아 천년 법률인 당률(唐律)이 있고, 페르시아와 로마와 인도와 티베트와 돌궐 등의 문화를 혼융해 빚어낸 문물이 있다. 1300여 년 전, 푸른 구름에 꿈을 태운 사람들은, 홀린 듯 끌린 듯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몰려들어 인구 100만을 넘긴 거대도시가 보여주는 웅장함과 민첩함에 넋을 잃었다.
제국이란 힘센 국가만은 아니다. 제국은 무력으로 정복하고, 매력으로 설득한다. 이런 의미에서, 당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제국을 이룬 첫 번째 나라다. 전성기의 당나라는 피부색이나 종교나 출신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으므로, 세상 모든 물이 모이는 거대한 바다가 되었다. “각국에서 몰려든 유학생, 학승, 호상(胡商), 번장(蕃將)과 사신”이 거리를 가득 메운 장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수도였다. 장안의 문화는 중국을 본류로 삼아, 몰려든 이들의 독특성이 합쳐지면서 서서히 인류 문화로 변해 갔다. 오늘날 뉴욕이 그러하듯, 장안은 영원한 이방이자 세계의 고향으로 존재했다. 그러므로 당나라는 중국의 한 왕조이면서 동시에 동아시아 자체였던 것이다.
역사 속의 당나라는 618년 고조 이연이 수나라 양제에 반기를 들면서 건국해 290년 동안 존속하다가 907년 마지막 황제 애제가 군벌 주전충의 압박을 받고 억지선양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당나라를 이해하는 일은 단지 옛이야기를 즐기는 호사만은 아니다. 한시의 역사가 알려 주듯, 당나라는 동아시아 모든 문화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과감히 말하면, 당나라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무의식에 해당한다. 우리는 아직 당나라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황제들의 당제국사’를 모두 읽은 후 첫 감상은 놀람과 슬픔이었다. 번역자가 말하듯, 이 책은 당나라 역사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담아낸 첫 번째 우리말 저서다. 당나라가 한국사와 가장 치열한 접점 중 하나를 이루고, 또한 통일신라를 통해 그 문물이 수용되어 한국인의 삶과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었음을 고려할 때, 당나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하지 못한 일은 학계든 출판계든 마땅히 놀라면서 스스로 책망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학자가 쓴 책답게 이 책은 사실이 바로 말하게 한다는 역사기술의 원칙에 충실하다. 정사에 근거를 두고 방대한 사료로 보충하여 민간에서 떠도는 설화들을 반박하면서 당나라를 이끌었던 스무 명 남짓한 황제들의 진면목을 건조할 정도로 담담하게 기술한다. 기존에 당나라 역사에 관심을 품었던 이들이든 아니든, 역사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 책을 통해 새로 알려질 사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예를 들면, 고조 이연은 흔히 태종 이세민의 야심을 좇아 어쩔 수 없이 거병하고 마침내 강제로 퇴위당한 허수아비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각종 자료를 통해 명문가 도련님이었던 이연이 오랫동안 그늘에 웅크린 채 자신을 감추다가 일시에 일어서 천하를 움켜쥔 은인자중의 야심가였음을 보여준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 무측천은 권력을 탐해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이고 아들마저 폐위했으며 혹리를 부려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한 악녀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무측천을 잔혹한 여인으로만 바라보려는 것은 남성 중심적 편견의 결과일 뿐이다. 실제의 그녀는 병약한 남편인 고종 이치의 오랜 동반자로 정국을 관리해 왔으며, 아들을 내몰고 제위에 오른 후에도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린 끝에 정관의 치세를 이어받아 개원의 치세로 넘겨준 놀라운 정치적 수완의 소유자였다. 양귀비라는 희대의 미인에 빠져 후대 시인들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애정담을 남겼지만, 자기가 이룩한 나라의 성세를 스스로 망쳤다는 현종 이융기도 그 이유로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의 죄는 나라의 성세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마음에 생겨난 느슨함과 권태, 거기서 비롯한 사치와 향락이었다. 황제가 사치하자 상류층이 이를 본받았으며, 다시 이를 그 아래 계층이 흉내 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총체적 붕괴가 당나라를 기울게 했던 것이다. 안녹산의 난으로 붕괴된 이후에도 당나라의 역사는 150년 가까이 계속된다. 개인적으로 지식의 거대한 공백과도 같았던 이 시기 일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컸다. 고구려 유민으로 알려진 이정기 일가의 제나라 이야기도 지방 군벌의 발흥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알 수 있어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황제들 평전 형태로 쓰였기에 이 책으로 당나라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음은 어쩔 수 없이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당나라 이후의 중국사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면서 관련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평론과 서평 >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주의 역사를 읽으면서 편집을 생각하다 _앤서니 그래프턴의 『각주의 역사』(김지혜 옮김, 테오리아, 2016) (1) | 2016.08.16 |
---|---|
[문화일보 서평]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_ 로버트 라이시, 『자본주의를 구하라』(안기순 옮김, 김영사, 2016) (2) | 2016.08.06 |
르네상스시대에도… 루이 14세때도… 회계(會計)가 곧 ‘심판’이었다 (0) | 2016.04.25 |
나는 선택하기를 거부한다 ―살만 루슈디의 『이스트, 웨스트』(김송현정 옮김, 문학동네, 2015)를 완독하다 (1) | 2016.02.21 |
마을 책방, 영혼의 쉼터가 되다 _『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남해의봄날, 2015) (0) | 2015.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