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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마을 책방, 영혼의 쉼터가 되다 _『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남해의봄날, 2015)

국회방송에 출연해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남해의봄날, 2015)를 소개했습니다. 괴산의 숲속작은책방의 주인이자 저자인 김병록 선생과 함께 아주 흔쾌하고 즐거웠습니다. 방송은 쑥쓰러우니, 사전 질문지와 답변을 공개합니다. 



Q : 이 책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A : 뜨겁고 부러운 책입니다. 책을 향한 타오르는 열정이 페이지마다 솟아올라 눈이 타버릴 것 같았어요. 계속 읽다가 눈이 멀어버리면 나도 서점이나 차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까 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죠. 저희 같은 읽기 중독자들은 항상 마음속에 두 가지 공간을 갖고 싶어 합니다. ‘서재’와 ‘서점’이죠. 어쩌면 읽기 자체가 이런 취향을 만들어내는 걸지도 몰라요. 서재는 혼자 읽기 위한 공간이고, 서점은 같이 읽기 위한 공간입니다. 책에 나오는 매력적인 독립서점 이야기를 읽다보니, 일을 저질러 버릴까 싶어서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읽다가 산책을 여러 번 나갈 수밖에 없었죠. 마음을 달래야 했으니까요. 질투도 나고 부러웠죠. 나도 이런 책방 하나 갖고 싶다. 책 읽는 내내 이런 생각뿐이었어요.


Q. 시골 마을 살리기의 일환으로 시작하신 것이 독특한 서점 공간으로 태어난 경우군요.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로 책과 관련된 공간이 많이 있나요? 

A : 국내에서는 아직 흔하지 않지만, 사실 필수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슬럼가를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서점을 하나 외곽에 연 겁니다. 그러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자연스레 드나듭니다. 주로 가난한 지식인들이나 예술가들이 많죠. 그러다 보면 이들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사귑니다. 당연히 이야기 나눌 카페도 생기고, 매력 있는 식당도 들어섭니다. 네트워크는 거듭제곱 효과를 낳기 때문에, 지역 전체가 고급한 문화 지구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책의 힘’이죠.

Q. “서점은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다.”라는 말이 책에 나오는데, 서점이란 곳이 좀 특별한 공간이긴 하죠? 예전과 지금 서점이 그 형태가 달라지고 있죠?

A : 요즘 주변에서 서점 보기 참 힘듭니다. 1994년 전국의 서점 수는 5,683군데였으나 2013년 말에는 1,625군데로 줄어들었고, 2015년 현재 서점 수는 1,500군데 이하로 추정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 중 한 사람인 이문열 선생의 고향이라는 경북 영양군 같은 곳은 심지어 서점이 한 군데도 없는 ‘서점 사막’입니다. 참담한 일이죠. 최근에 도서정가제 실시로 다소 완화되었지만, 그동안에는 온라인서점의 할인공세 때문에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겁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숲속작은책방’과 같은 개성적인 독립서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때 독립이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중앙으로부터의 독립’ ‘몰개성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작은 자본을 가지고 자신의 선호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서점들을 열고 있는 겁니다. 비슷한 선호나 취향을 가진 출판사들, 독자들도 이런 서점을 중심으로 뭉쳐가고 있습니다. 문화 다양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아주 소중한 움직임입니다.


Q. <숲속작은책방>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은데요. 서점 하면 다양한 책들이 있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 좁은 공간이다 보니 보유한 책들의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보유서적에 대한 원칙 같은 게 있나요? 

A : 저는 책을 읽으면서 백창화 씨가 쓴다는 손글씨 띠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띠지는 두 배나 정성이 필요하죠. 일단 책을 읽어야 하는 수고가 있어야 하고, 또 예쁜 글씨로 적어가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책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체인서점이나, 책의 실물을 만져볼 수 없는 디지털 서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아날로그적 접근입니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일반화되어 있고, 가을에 독일에 다녀왔는데 독일서점에서도 도입했더군요. 또 하나 주인장의 친구들이 추천하는 책 목록입니다. 책은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늘 무엇이 좋은 책인지, 나한테 맞는 책인지 몰라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사실은 ‘친구 추천’이 우리가 책을 사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친구가, 연인이, 가족이, 선생님이 골라 주는 책을 사는 것이지, 자신이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서 사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이미 어떤 책을 살지 마음속으로 정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데, 여기처럼 다정한 서점이 있으면 ‘하나 더’ 사거나, ‘깜빡 잊고’ 다른 책을 사가지고 오는 거죠.^^ 


Q. 책을 읽다 보니 이곳에 꼭 가고 싶었던 점이, 숲속에 있는 장점을 살려 자연과 하나 되어 읽는 독서 체험이 부럽더라고요. 

A : 사실 저도 이 책은 시골마을에서 읽었습니다. 주말마다 홍성으로 내려가서 마을 사람들과 같이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씁니다. 물론 텃밭도 조금 합니다. 지금 땅 밑에서 지난번 심은 마늘이랑 양파가 자라고 있겠네요. 저는 작은 창으로 텃밭을 내다보면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합니다. 나비도 날고, 벌도 날고, 새들도 무리지어 움직입니다. 때때로 길고양이도 지나갑니다. 멀리서 고라니가 울고,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쬡니다. 바람이 책장을 넘기는 일도 있는데, 그때마다 친구랑 같이 책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죠. 어서 읽자, 어서 읽자 하면서 서너 장씩 책장을 들추는 거죠. 읽다 지치면 낮잠을 자기도 하고, 뒤쪽 솔숲으로 산책을 가기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책의 세계가 저절로 몸에 붙는 걸 느끼곤 합니다. 자연이 책을 같이 읽어준다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 드는 거죠.


Q. 작은 서점들 중 요즘엔 ‘테마 서점’이 생겨나 특정 고객들이 단골이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A : 마포에 있는 책방 피노키오도 있죠. 그림책만 파는 곳입니다. 요즈음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그림책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원주 같은 곳에서는 어른들이 모여서 그림책만 읽는 읽기 모임을 몇 년째 계속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림책은 그 자체로 종합예술입니다. 시가 있고, 소리가 있고, 그림이 있고, 연극이 있습니다. 세부를 파고들다 보면 놀라운 세계가 숨어 있습니다. 일단멈춤은 여행책을 주로 다룹니다. 사실 여기는 여행이라고 했지만 여행 정보 책은 아니고 여행에 대한 인문적 성찰이 담긴 책들을 함께 취급하고 있습니다. 가령, 파리를 알려면 파리 지도나 가이드북만으로는 곤란하지요. 정수복의 『파리를 생각한다』 같은 인문서나 『레미제라블』이나 『악의 꽃』 같은 문학작품도 같이 읽어야 파리의 속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멈춤은 ‘여행책 서점’이 아니라 ‘여행인문학서점’이라고 부르면 좋겠네요. 


Q. 요즘 독립출판물이 출판업계에 작은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하는데 ‘독립출판물’이 뭔지 설명 좀 해주세요. 

A : 간단히 말하자면, 상업화된 기존 출판사를 이용하지 않고, 개인 또는 소수가 모여서 자기가 내고 싶은 책을 내는 걸 독립출판이라고 합니다. 책은 본래 소수 미디어인 만큼, 상업성 여부와 관련 없이 의미만 있으면 일단 출간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채산성을 따지지 않을 수는 없죠. 기존 출판사에서 채산성 이하로 판단해 도저히 출판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책들은 저자와 그 친구들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독립출판은 세 가지 기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즉 이윤과 관계없이 좋아서 출판해야 합니다. 시선의 독립, 즉 기존 출판에서 취급하지 못하는 낯선 시각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하나 더 하자면, 우애입니다. 편집, 디자인, 배포, 판매 등에서 얼마나 우정을 생성하느냐 하는 거죠. 출판이 있으면 서점도 있습니다. 홍대 부근을 중심으로 해서 이런 독립출판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이 생겼고, 비교적 성황리에 운영되는 중입니다. 우애의 출판이 있으면, 우애의 서점도 있는 거죠. 한 해에 한 번씩 독립출판인들이 모여서 북페어도 엽니다. 얼마 전에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는데, 이틀 동안 1만 2000명이나 몰리는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Q. 책과 사람 그리고 공간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바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곳’인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책과 관련해 다양한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스테이’라고 책에 소개돼 있는데 그런 곳들 좀 소개해 주세요. 

A : 저는 일본의 키조 그림책 마을이 흥미로웠습니다. 키조 그림책 마을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환상의 공간입니다. 일본 큐슈의 미야자키 현에 있는 키조 그림책 마을은 마을 전체가 그림책을 모티프로 해서 되살아났습니다. 숲속 그림책 도서관, 숲속 책방, 그림 연극 오두막 등이 마련되어 있어, 천혜의 자연 속에서 쉬면서 책도 읽고 이야기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책에서 읽으니 꼭 갔다 오고 싶어졌습니다. 자연은 본래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아가면 누구나 편안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자연 그 자체는 주변에서 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야기, 즉 문화가 필요합니다. 일종의 ‘액센트’ 같은 겁니다. 자연이 있고, 문화가 있어야 비로소 사람들 눈에 들어옵니다. ‘북스테이’는 마을 살리기를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Q. 책과 관련된 복합문화공간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A : 본래는 책만 있어도 되죠. 책 안에 세계 전체가 담겨 있으니까요. 하지만 책은 온라인에서도 살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책방은 독자한테 독특한 체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일부러라도 가고 싶게 만들어야 하죠. 그러려면 독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자극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벤트가 있어야 합니다. 


Q. ‘책을 읽고 사는 행위’야말로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책에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독립서점에서 쇼핑하는 건 정치적인 선택’이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A : “지역서점에서 10달러를 소비하면 4.5달러가 지역에 남지만, (대형) 서점 체인을 이용하면 지역에 남는 돈은 1.3달러에 불과하고,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면 한 푼도 지역에 남지 않습니다.” 미국의 한 서점에 붙어 있는 말입니다. 지역의 독립서점을 이용하는 것은 곧 자기 지역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Q. ‘책이란 삶의 다른 말이다. 다른 이의 삶의 역사와 흔적 없이 오늘 우리들의 삶이란 없다. 오늘 우리가 걸어간 이 길은 내일의 또 다른 역사를 준비하는 초석이다.’ 책의 마지막에 나온 구절이죠.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 : 소설가 조지 R. R. 마틴은 “책을 읽는 사람은 죽기 전에 인생을 수천 번이나 살아가는 거야.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오직 한 번밖에 인생을 살지 못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내 안으로 초대하는 겁니다. 오직 사랑만이 이와 비슷합니다. 사랑하면 사람이 바뀌잖아요. 오로지 나로서 살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면, 조금씩 양보도 하고 타협도 할 수밖에 없죠. 마찬가지로 읽기는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보면서 내 안의 세계를 혁명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