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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2015년 나를 뒤흔든 책] 세상의 고통에 지지 않는 ‘마법의 주문’ _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중앙일보)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 카렌 암스트롱 지음 / 정영목 옮김, 푸른숲, 302쪽, 1만6000원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마법의 주문’을 하나씩 챙긴다. 세상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질 때마다, 인생의 축이 뒤틀릴 때마다, 몸이 고통으로 괴로워할 때마다, 앞날이 비애로 가득 찰 때마다 스르르 떠올라서 마음에 힘을 붙여주는 구절 하나.

“틀림없이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에서 만난 ‘마법의 주문’이다. 마음에 칼이 선 상태로 사람은 무엇도 할 수 없다. 뾰족한 끝이 자신을 찌르고 벼린 날이 친구마저 베기 십상이다. 삶의 의미가 돈에 먹혀 버린 실망과 공허를 이기지 못하던 나날에, 방송국 소개로 이 책을 만났다. 역사적 붓다 고타마의 수행을 한 문장씩 따라가면서 눈의 비늘을 조금씩 떼어낼 수 있었다.

고타마는 삶이란 기쁨보다 슬픔에, 즐거움보다 괴로움에 가깝다고 말한다. 모든 인생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삶의 무게를 기쁨에 두기에 사람들은 쾌락을 좇아 몸을 불사르고, 즐거움에 놓기에 사소한 어려움에도 쉽게 고꾸라진다. 이 세상 삶이란 생로병사의 업을 등에 진 고통의 연속임을 통찰해야, 오히려 이 헛되고 무력한 삶을 해탈해서 또 다른 삶을 살아보려는 거룩함에 대한 갈망에 진지해진다. 괴로움의 한가운데에서도 마음에 고요한 중심을 마련해서 깊은 평화를 체험할 수 있다.

진리에 대한 갈망 속에서 고타마는 온갖 스승을 만나 수행을 전전했으나 끝내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고타마는 실패에 지지 않고 곧바로 일어서 스스로 방법을 찾기로 결심하면서 말한다. 

“틀림없이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무문(無門)의 문(門)을 열고, 길 없는 길을 떠난다. 그러니까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자이면서 동시에 실패로부터 일어선 자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불현듯 마음의 북소리가 들렸다. 깊은 곳으로부터 거대한 갈증이 해일처럼 일어섰다. ‘일하려고 책을 읽는 삶이 아니어야 한다. 책을 읽으려고 일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러자 온몸의 피가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

고타마는 “새로운 인간이 되는 방법”을 만들어내려 했다. 슬픔 속에서 기쁨을, 괴로움 속에서 즐거움을 발명하려 했다. 우리 비루한 현대인들은 환멸과 절망에 지친 끝에 자신한테 폭력을 휘둘러 스스로를 파괴해 버린다. 고타마는 세상의 고통에 지지 않는 ‘마법의 주문’을 우리한테 선물했다.

“틀림없이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 중알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5년이 닷새 남았네요. 이렇게 하루씩 책과 함께 저물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