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11시 40분, KBS 텔레비전에서 「TV 책을 보다」에 출연했습니다. 홍익대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 2015) 편이었습니다.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저를 보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얼굴 빨개지는 일입니다. 아내가 옆에서 깔깔대면서 한마디 할 때마다 은근히 상처를 입습니다. 어젯밤의 쟁점은 불행히도 책이 아니라 머리 모양이었습니다. 단발로는 모양이 안 난다나, 지난번 머리 길었을 때가 더 낫다나, 수다를 떨었습니다. 역시 소파의 본래 용도는 집중이 아니라 수다이기는 하죠.
처음보다는 상당히 익숙해졌지만,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방송이란 참 힘든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카메라 여덟 대가 동시에 돌아가면서 출연자의 모든 것을 잡아내기에 화면에 나오지 않을 때에도 저절로 긴장하게 됩니다. 스튜디오 대본을 주는데, 다음번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보면 가끔 논의 맥락을 놓치기도 합니다. 김솔희 아나운서가 편안히 질문해 주면서 정신을 제자리에 갖다놓지 않으면 끝장입니다.
방송에 출연이 확정되면, 먼저 사흘 정도 책을 읽을 시간을 주고 예비 질문지가 날아옵니다. 책의 내용을 참조해서 작가의 질문(이 책은 한지원 작가가 담당입니다.)에 서면으로 이런저런 답을 하는 게 첫 단계입니다. 처음 출연했던 저처럼, 여기에서 안심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방송 하루 이틀 전에 이른바 ‘스튜디오 대본’이라는 게 옵니다. 각 출연자에게 받은 예비 질문지를 종합해서, 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재구성한 대본입니다. 이 대본에는 연기가 들어 있습니다. 서로 역할을 분담해서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도록 김솔희 아나운서 역할을 대신하는 등 이런저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게다가 가장 무서운 부분, “자유롭게 대화하시고”도 있습니다. 이 구절을 볼 때마다 한용운의 시 “남들은 자유를 좋아한다지만 저는 복종을 좋아해요.”가 떠오릅니다. 예능은 정말 대단합니다. 카메라와 청중을 앞에 두고 어떻게 자유롭게, 편안하게 대화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지.
어쨌든 작가 분한테 보내지는 않지만, 스튜디오 대본에 다시 일일이 구어체로 답변을 답니다. 그리고 종이에 출력을 해두면 못내 안심이 되지요. 방송 녹화 한 시간 전까지 스튜디오에 도착해야 하는데, 분장을 하고 의상을 갈아입는 시간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방송에서 피부가 뽀얗고 젊어 보이는 것은 순전히 분장 빨, 조명 빨입니다. 게다가 평소에 잘 입지 않는 밝은 색 옷을 입어서 분위기를 살립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제가 출력한 종이를 가지고 현장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따로 출력해 준 대본을 들고 녹화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뒤쪽에 프로그램 이름이 적혀 있는 두꺼운 마분지를 덧댄 진짜 대본이 따로 있었던 겁니다. 으악,입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지지요. 출력해 온 것을 그야말로 열심히 대본에 옮겨 적어야 합니다. 공간이 좁으니까 요점을 정리하고 꼭 해야 하는 표현들을 적어두지 않으면 현장에서 말을 더듬게 되더라고요.
현장에서 애드리브가 있느냐고요. 진행자인 김솔희 아나운서는 몰라도 솔직히 출연 경험이 적은 저로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때때로 시도해 보려고 애쓰지만, 실제 방송에 나오는 건 잘 못 봤네요. 어쨌든 이런 준비 과정을 거쳐서 일단 스튜디오에 들어가 녹화가 시작되면 그다음에는 일사천리입니다. 임전(臨戰) 후에는 무퇴(無退)입니다. 정신없이 1시간 30분 정도 흘러갑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거의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어제 방송을 보다 보니 저런 말을 했나, 하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쨌든 방송 출연은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일종의 말로 하는 서평, 대화로 풀어가는 서평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나면, 대기실에서 모두 모여 짧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진도 한 장 찰칵, 찍습니다. 유투브에 짧게 방송 클립이 올라왔네요. 아래에 옮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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