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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지금, 출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기획회의》 기고)


《기획회의》 356호에 여는 글을 썼다. 이번 호 특집은 2013년 출판계 키워드 50으로 올해를 돌이켜보고 내년을 전망하자는 것이다. 해마다 11월 마지막 호는 이 특집으로 꾸려진다. 여는 글 역시 이에 걸맞았으면 했는데, 쓰다 보니 그러지 못하고 조금 우울한 어조가 나와 버렸다. 아마 글을 쓸 때 감기로 몸이 아팠던 탓일 터이다. 어쨌든 아래에 옮겨서 기록해 둔다.


《기획회의》 356호



어려운 시절(Hard Times)!

산업 자본주의가 확산되던 시절, 고난에 빠진 영국 노동계급의 처참한 삶을 보여주려고 찰스 디킨스는 자기 소설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오늘날 한국출판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누군가 같은 이름표를 붙이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말과 글의 비즈니스답게 해마다 출판은 수많은 화제들을 쏟아내는데, 올해에는 표 나게 부정성이 도드라지는 걸 보니 아찔한 기분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왜 우리는 길을 잃은 것일까? 인구 감소, 모바일 충격, 청년 실업 등 외부성이 출판을 실족시킨 것일까. 과잉 생산, 도서 정가제 붕괴, 종이값 상승, 투기성 투자 등 내부성이 출판을 망쳐 버린 것일까. 바깥이 칠흑인데, 안쪽 역시 컴컴하다. 눈밭 위에 서리가 내린 길을 맨발로 걷는 나날이 이어진다.

이는 다만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일본은 십여 년 전에 이미 출판 대붕괴를 예견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대책을 짜냈지만 책(출판)의 쇠락을 막지 못했고(사노 신이치, 한기호 옮김, 누가 책을 죽이는가, 시아출판사, 2002), 미국과 유럽의 출판계 역시 진격의 자본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다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앙드레 쉬프랭, 한창호 옮김, 말의 가격, 사회평론, 2012). 책의 본원적 가치를 역설하고 공적 부조를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출판을 구하기에 역부족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출판을 아예 시장 바깥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말이다.

어쨌든 갈수록 악화되는 전 세계 출판의 상황은 출판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지난달에 열렸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가장 많이 탐구된 질문 중의 하나는 “What is the Publishing, Now?”였다. 때 아닌/뒤늦은/뻔한 이 질문은 변화하는 세계가 책(출판)의 세계에 입힌 상처의 깊이를 보여준다.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고는 위기를 탈출할 길이 없는 것이다.

저자로부터 독자에 이르는 출판의 가치 사슬에 밀어닥친 충격은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하면서 기존의 모든 구조를 파괴한다. 오프라인 서점은 점점 사라지고, 온라인 서점은 한계에 이르며, 중고서점은 날뛴다. 수익 압박에 밀린 끝에 서점 공간은 책의 가치에 따라 배치되지 않고 투입 마케팅 비용에 따라 판매되는 등 자본에 포획되어 버린다. 신문 서평란, 출판 전문지 등 책 관련 담론이 생성되고 확산되는 공적 영역은 소멸하거나 축소되고, 그에 따라 책은 내용이 아니라 곁다리콘텐츠(저자 지명도, 판권 가격, 댓글, 경품 이벤트, 팟캐스트, 북 콘서트, 반값 할인 등)의 유무에 의해 주목받는다. 웹툰이나 자가출판처럼 출판사 없는 출판이 실현되기도 하고, 북카페, 저작권 서비스, 강연, 세미나 등 출판의 서비스화가 서서히 진행되기도 하며, 인문학 협동조합 등 저자-독자 공동체가 중간 과정 없이 생산과 소비를 하나로 연결하기도 한다.

출판을 둘러싼, 과거의 모든 규칙이 붕괴했는데, 새로운 규칙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작가들은 계속 쓰고 독자들은 계속 읽는다. 쓰기와 읽기의 도도한 연속성은 더욱더 큰 격류가 되어서 출판을 덮친다(소수가 쓰고 소수가 읽거나 소수가 쓰고 다수가 읽는 시대를 지나서 오늘날 문명은 다수가 쓰고 다수가 읽는 문자 전성기로 정의된다). 어쩌면 수많은 쓰기/읽기 비즈니스 중 쇠퇴의 운명에 처한 것은 오직 사각형의 물리적인 책을 만들어 서점이라는 경로를 통해서 독자들과 만나는 이른바 종이책출판뿐일 수도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전 세계 출판 전문가들이 출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당연하다. 쓰기와 읽기의 전성기에 출판이란 이제 무엇이어야 하는가? 책의 창조인가, 제작인가, 유통인가, 홍보인가, 아니면 서비스인가? 낭만적 열의를 조금은 접어두고 냉혹한 현실에 발을 굳게 디딘 채 이 질문에 대해 적절하게 답하지 않고는 우리는 아마도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냉혹한 현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매출 감소라는 비명은 현상일 뿐 어쩌면 별로 차갑지 않다. 책 한 권을 잘 고르고 열심히 팔아서 한 해의 경영 수지가 잠시 개선되었다고 해서(사실 다른 대안이 있지도 않지만) 볕든 날이 쉬이 돌아올 리 없다는 뜻이다. 격류가 흐를 때에는 헤엄을 잘 치는 것으로는 현실을 이겨낼 수 없다. 일단 큰 배에 올라타거나 물가로 나가 강의 흐름을 지켜보아야 한다. 진짜 차가운 것은 다음과 같은 자료이다. 출판이 처한 구조적 변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국제출판협회 2012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세계 시장에서 한국은 매출규모로는 10위지만 100만 명당 발행부수로는 6위다. 1인당 독서량도, 시장도 작은데 미국, 일본보다 인구 대비 발행부수는 더 많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인구 감소, 청년 실업, 스마트폰 보급률 등 주변 상황은 꾸준히 악화되어 도서 총수요는 감소하는데 공급은 늘어난다. 과포화 상태인 시장에 도서정가제 붕괴, 마케팅 과열 등으로 가수요가 생기고, 그 탓에 거품이 계속 낀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버블은 운명이지만 동시에 반드시 붕괴하게 마련이고, 일단 재앙이 시작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전자책 활성화 등 출판계 공동으로 버블의 출구를 시급히 마련해 물길을 돌리지 않으면 내리막의 가속도를 피할 길이 없다. 전자책 시장이 종이책 시장의 2% 내외에 그치는 등 생각만큼 확산되지 않는 걸 보고, 디지털 충격이 한국을 비껴갔다고 진단한다면 어리석다. 이 결과는 디지털 충격의 최악을 맞이했다고 해석하는 게 옳다. 게임, 방송, 만화, 뉴스 등 스마트폰 위에서 벌어지는 콘텐츠 소비 전쟁에서 출판이 철저하게 패배한 결과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마트폰 사용자만 놓고 보자면, 책이 그다지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달 삼성카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자료가 나왔다. 자료에 따르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모두 한국의 20대는 50대보다 책을 사지 않았다. 다른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이 자료는 그 자체로 상당히 충격적이다. 서점은 더 이상 한국의 20대에게 매력적 공간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책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제 책은 예전처럼 선험적으로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그 매력을 경험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사물이 된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이 초유의 통계가 장기적으로도 사실로 굳어진다면 출판은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책의 매력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소 우울하지만, 이 냉혹한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출판의 현재 자리를 묻도록 만든다. “지금, 출판이란 무엇인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할 시기다. 잠시 우리 업의 본질을 다시 탐구할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