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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만드는 일

책과 사람을 연결하라 (한국일보 기고문)



신년 《한국일보》 출판면에 기고한 글이다. 요즈음 나의 관심사는 ‘연결성’의 확보를 통해 “비독자를 독자로 만드는 실천”이다. 다매체 경쟁 시대에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는 더 이상 독자를 만들기 힘들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전 세계 출판계에서 일어난 일이 이를 증명한다. 출판이 앞으로도 생존해 번영하기 위해서는 책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출판 실천들을 통해 비독자를 꾸준히 독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출판계의 화두로 삼으려고 제안한 글이다.



충남 홍성의 홍동마을에는 30년간 함께 책을 읽어온 할머니 독서모임이 있다. 수천 쪽이나 되는 우치무라 간조 전집을 완독한 할머니들은 홍동밝맑도서관에서 열린 2014년 낭독의 밤 행사에서 인상깊게 읽은 구절을 낭독했다. 그물코출판사 제공




책과 사람을 연결하라



“캄캄한 밤에도 노래는 있는가?”


어느 날, 독일의 시인 브레히트의 귓가에 갑자기 질문 하나가 던져진다. 시대는 절망이다. 파시스트들은 갈수록 세력을 넓혀가고, 사람들은 사적 대화조차 감시 당하고, 직장에서 거리로 내몰렸다가 사라진다. 이런 시절에도 부를 노래가 있을까. 생각을 가다듬고 연필을 놀려 시를 쓸 수 있을까. 질문이 귓속에서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시간이 흐르고 밤이 절정일 무렵 시인은 문득 부르짖는다.


“아무렴, 어두운 밤에는 어둠의 노래가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넘어져 있을 때, 시인은 시대의 어둠으로부터 단호히 긍정을 생성한다. “아무렴!” 어둠이 무거울수록 빛 역시 같이 무거워진다. 따라서 ‘어둠의 노래’는 반드시 행진곡 풍일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출판을 둘러싼 어둠은 브레히트의 시대처럼 점점 깊어져만 갔다. 작년 출판계를 정리하는 콘퍼런스에서 밝힌 바 있듯이 “모바일 혁명에 따른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보급 및 여가시장의 급변,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 및 고령화에 따른 구매력 축소, 금융 위기 이후 전 세계 경제의 장기적 불황, 국내 산업의 반복적 구조 조정 및 청년 실업에 따른 청장년 문화 향수 계층의 시장 이탈,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정보기술 기업의 전자책 시장 진입과 그에 따른 시장의 파괴적 진화, 동네 서점의 지속적 감소 및 온라인 서점의 성장 정체, 도서정가제 붕괴에 따른 가격파괴형 저수익 시장 형성, 언론 서평이나 사회단체 추천 등 출판 공론장 약화에 따른 도서 소비의 문화 지향 축소 등”이 책의 세계를 압박하면서 국민 1인당 도서 구매량이 5년 전에 비해 무려 25% 이상 감소하는 등 출판 산업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에 생존 위기에 몰린 출판사들은 책의 질을 중심에 둔 ‘문화 경쟁’이 아니라 90%에 이르는 할인까지 동원하는 ‘마케팅 전쟁’을 통해 독자를 설득하려 했고, 그 바람에 가격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책의 콘텐츠 가치에 대한 신뢰는 기대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작년 말 전격적으로 실시된 개정 도서정가제가 다소 안정 기조로 정착되면서 새해를 맞는 지금은 닭이 막 홰에 오르려 하는 중이다. 밤이 아주 깊었던 만큼 새벽은 더욱 높으리라고 믿는다. 먼저 함께 마법의 주문을 외워보자.


“아무렴!”


출판이 ‘어둠의 노래’를 통해 새벽을 불러들이려면, 단지 ‘좋은 책’을 펴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결성’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정보화 혁명 이후, 출판이 의지해 왔던 인간과 책이 만나는 접점들은 조금씩 소실되어 왔다. 출판의 기본 읽기 모델인 ‘긴 글 읽기’는 디지털 친화적인 ‘짧은 글 읽기’에 밀려서 고전 중이다. 책의 주요 생산자인 대학의 연구자들은 국가적 압박을 못 이기고 스스로 세 명밖에 읽지 않는다고 자조하는 자잘한 ‘논문 쓰기’에 열중하면서 지식의 가능성을 확장해 사회와 연결하는 증폭기인 ‘책 쓰기’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입력과 출력이 동시에 폐쇄된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인 법이다.


물론 인간은 책 없이 살 수 없다. 일단 책과 만난 후에는 헤어질 수도 없다. 와인 방울이 떨어진 물그릇처럼, 일단 읽고 나면 책은 영혼을 영원히 물들여 버린다. 게다가 지식의 반감기가 점점 짧아지고, 기술의 급진적 발전이 수많은 직업들을 일상적으로 집어삼키는 탓에 현대인들은 자신을 영원히 재교육해야 한다. 책을 통해서 편집된 지식을 필요할 때마다 빠르게 수용하지 않고는 생존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블로그, 강의, 이러닝 등 접근 가능한 지식 형식이 넘치는 ‘미디어 경쟁 시대’에는 막연한 당위만으로는 사람들을 외려 책에서 쫓아내기 십상이다.


따라서 오늘의 출판에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책, 책과 책 사이를 이어주는 수많은 연결들을 상상하고, 이를 곳곳에서 실현할 줄 아는 출판 실천 능력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시인 김행숙의 말을 빌리면, 언제, 어디에서나 책을 만날 수 있는 “마주침의 발명”을 모든 곳에서 시도해야 한다. 책을 필요로 하고 읽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처에 있다.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 것은 매력적인 연결들이다. 책과 인간을 이어주는 혁신적 실천들이다.


아마존의 최고 경영자 제프 베조스는 말한다.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킨들의 비전은 모든 책과 인쇄물을, 모든 언어로,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60초 이내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나는 베조스의 꿈을 사랑한다. 수십 년 후 그는 아마존을 이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꾸는 꿈은 아마존이라는 회사를 통해서 계속 작동할 것이다. 한국 출판에는 이런 거대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인간과 책을 연결하라.”


전자책 이야기가 아니다. 온오프라인은 상관없다. 희망의 출판은 책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책과 사람의 무수한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책 읽는 사람은 늘 소수파였지만, 요즈음에는 더욱 고립되어 있으며, 책 친구를 만나기가 정말 힘들어졌다. 읽기로 가득한 지하철에서 책과 만나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그러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이 희귀해졌을 때, 출판이 할 일은 한탄이 아니라 그곳을 책의 공간으로 재발명하는 실천을 끊임없이 행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책 읽는 지하철’은 그래서 작지만 소중하다.


충남 홍성의 홍동마을에는 ‘목요 독서 모임’이 있다. 마을에서 흔히 ‘할머니 독서 모임’으로 불리는 이 모임의 역사는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불혹에 모임을 시작해서 칠순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무려 30년 동안 다섯 분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꾸준히 책을 읽어 왔다. 따라서 읽은 책의 양도 엄청나다. 수천 쪽에 이르는 ‘우치무라 간조 전집’ ‘김교신 전집’ 등을 한 권씩 읽어서 모두 완독했다. ‘이문회우(以文會友)’, 책으로 벗들을 만나고 그 벗들과 함께 평생을 보냈다고 할 만하다.


이처럼 시골 마을에조차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혼자 읽고, 같이 읽고, 돌려 읽고, 모여 읽으면서 책과 함께 평생을 살아간다. 이들이 책과 읽기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들이다. ‘연결성’을 화두로 삼아 이들과 더 자주, 더 많이 이어지는 실천으로 나아간다면, 새해의 출판은 희망을 반드시 건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