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번역/후한서

어지러운 시대, 答은 있나…2000년 전 中 왕조에 묻다(매일경제)

이번에 후한서』를 출판하고 나서 주요 일간지 여기저기에 기사가 났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나씩 이 블로그에 옮겨서 차례대로 소개합니다.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의 신나라는 불과 10년 만에 잇단 실정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다. 전한 경제의 6대손 유수가 고향인 남양군에서 의병을 일으켜 서기 25년에 한나라를 재건하고 황제에 오르니 그가 곧 후한 광무제다. 

그에 이은 명제, 장제, 화제 치세에 전성기를 맞지만 이후 어린 황제들이 연속해 즉위하자 외척, 환관, 호족 등에 의한 투쟁이 본격화하면서 순식간에 나라가 도탄에 빠진다. 조조, 유비, 손권이 패권을 놓고 싸우는 삼국쟁패 시기를 맞아 결국 마지막 헌제가 조조의 셋째 아들 조비에게 겁박을 받고 황제 자리를 양위하면서 후한은 220년 종말을 고한다. 

후한이라면 삼국시대 전 단계로 흔히 황건적이 발흥하고 군웅이 할거하는 한나라 마지막 시대만 떠올리지만 그 어떤 시대만큼이나 역동적인 왕조였다. 유사 이래 중국의 오랜 숙적이었던 흉노와 전쟁을 완결함으로써 흉노 전체가 중국사에서 사라진다. 서쪽 강족, 남쪽 만족 등 이민족을 중국 역사 속으로 통합하면서 `중화` 체계를 완벽히 확립한다. 

위진남북조 사람 범엽(398~445)이 저술한 `후한서`는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진수의 `삼국사`와 함께 중국 4사(史)로 꼽힌다. 책은 왕조의 역사서인 동시에 간신의 전횡을 고발하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려는 숱한 지사들 얘기를 담은 선비들 역사서였다. `일당백` `오리무중` 등 수많은 고사성어의 보고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혔다. 고려시대엔 과거시험 필독서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경연 등에서 왕과 신하가 함께 읽고 뜻과 교훈을 논하는 책이었다. 

민음사 대표 편집인 장은수 씨(46)가 우리말로 옮긴 `후한서 본기`는 뜻밖에도 국내 첫 완역서다. 책 무게를 볼 때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서가 나오지 않은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어떻든 다른 나라의 2000년 전 역사지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준다. 세월호 비극과 같은 큰 참사가 벌어지면 중국 옛 임금들은 3공 중 한 명을 반드시 파직했다. 세상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오직 권력만 차지하기 위해 추악한 정치투쟁을 벌이는 상층 귀족들 모습은 여의도에 갇혀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대한민국 정치인들과 똑같다. 

[배한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