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함부로 묻지 못할 질문이다. 사람들은 이 고통스러운 질문이 자신 앞에 제발 다가오지 않기를 끊임없이 기원한다. 지독한 어리석음! 그러나 살아가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이 질문을 회피할 길은 없다. 이것은 세계의 어둠 속에서 불쑥, 그러나 치명적으로 우리를 엄습한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자기 자신의 빛이 없다면 타인의 빛으로 자신을 밝힐 수는 없다.”(『라 셀레스티나』) 오늘 후배랑 아주 길게 이야기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20세기 중국 최대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인 지셴린(季羨林)의 에세이 『인생』(이선아 옮김, 멜론, 2010)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알라딘 세일 때 샀던 책 중 하나다. 베이징대의 터줏대감 중 한 사람으로 ‘국학대사(國學大師)’라고 불린 인물이다. 일찍이 『설탕의 역사』로 이름만 접했던 대사상가가 쓴 가벼운 에세이다. 조금 싱겁지만 내친 김에 읽어 버리기로 했다.
(1) 지셴린(季羨林)의 에세이 『인생』(이선아 옮김, 멜론, 2010) 중에서
― 전례 없는 재앙을 기록으로 남겨 두지 않으면 후손이 교훈을 얻지 못할 것이며, 훗날 잔혹한 바보짓을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8쪽) 문화대혁명이 중국 지식인들한테 남긴 상처는 깊디깊다. 재앙의 시학이 그들의 글에서 끝없이 되풀이된다. 우리에게 이 정도 깊은 상처를 지식인에게 남긴 것은 솔직히 말해서, 이미 기억조차 희미해진, 한국전쟁뿐이다. 박정희의 유신과 전두환의 독재가 그에 비견할 만하지만, 놀라운 경제 발전이나 일정한 승리 경험이 있어 다소 약한 기분이다. 젊은 세대 쪽으로 내려가면 한국전쟁만큼이나 영혼을 깊이 벤 것은 반민주가 아니라 아마도 국가 부도(IMF)와 그 후폭풍인 신자유주의일 것도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은 탐구가 필요하다.
― 거칠고 변화 많은 세상에서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걱정할 것이 없으리. (도연명) (8~9쪽)
― 인간의 역사 속에서 모든 세대는 자신만의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와 가치이다. (28쪽)
― 사람에게는 슬픔과 기쁨, 헤어짐과 만남이 있고, 달에게는 흐림과 맑음, 참과 이지러짐이 있어서 예부터 이 일은 온전하기 어렵구나.(소동파) (29쪽) 원문은 “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此事古難全”이다. 천고의 절창 「수조가두(水調歌頭)」에 나오는 구절이다. 번역은 정확하지 않은 듯하여 손봐서 올린다. 등려군의 노래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다만 바라노니 임이 오래 사시어)로 유명하다.
― 세상일의 십중팔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일은 한두 가지밖에 없네.(방악) (29쪽) 원문은 “不如意事有八九, 可與語人無二三”이다. 백화 원문은 알 수 없으나, 원문을 직역하면 “일의 십중팔구는 뜻대로 되지 않고,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두세 사람밖에 없다.”로 옮겨야 한다.
― 임금을 따르는 것은 호랑이를 따르는 것과 같아 좋은 시절이 없다. (31쪽)
― 노자는 말하기를, “화는 복에 의탁하고 복은 화 속에 숨어 있어, 하나가 극에 달하면 다른 하나가 나온다.”라고 했다. (33쪽)
― 행운이 찾아왔을 때에는 불행이 올 것을 생각하여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라. 또 불행이 왔을 때에는 행운이 찾아올 것을 생각해 지나치게 낙심하지 말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또한 장수의 비법이기도 하다. (35쪽)
― 가득 차면 덜어내는 것을 부르고, 겸손하면 더함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이치다.(서경) (46쪽) 원문은 “滿招損, 謙受益, 時乃天道.”이다.
(2)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04) 중에서
― 새 군주가 영지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이해 분별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맞서 싸우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182쪽)
― 편력 기사들의 삶이란 천 가지 위험과 불운에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다. (183쪽)
― 시간이 지우지 못할 기억이란 없으며, 또한 죽음이 희석하지 못할 고통도 없다. (184쪽)
― 행운이란 것은 숱한 불행 속에서도 빠져나갈 여지를 주기 위해 한쪽 문을 열어놓고 있는 법이란다. (185쪽) 이 놀라운 긍정성. 위험을 받아들이고 불운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이 삶.
― 제 천직이 약한 자를 돕고 비리에 괴로워하는 자들의 원수를 갚으며 배신을 응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205쪽)
― 산초야, 네 마음속의 두려움이 네가 올바르게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의 효력이 바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217쪽)
― 저 영악한 우리의 원수 놈은 모습을 감출 줄도 둔갑할 줄도 안다. 명심해라, 산초야. 그들에게 우리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220쪽)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토록 감각적인 설명이 또 있을까.
―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하지 않고서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해지길 바란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에게 일고 있는 이런 폭풍우는 곧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오고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징조이기도 하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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