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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3일(월)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브라이언 오리어리(Brian O’Leary ), 「콘텐츠가 아니라 콘텍스트다」

이 자료는 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받은 것이다. 지난번 좌담이 있을 때 읽었는데, 오늘 시간을 내서 다시 꼼꼼히 살펴보았다. 조금 시간이 지난 글이기는 하나 여러 모로 통찰력 있는 글이다. 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초고를 제공했는데, 여기 요약해 실으면서 맥락에 따라 교열했다.


― 이 책에서 콘텍스트는 ‘문맥’이 아니라 우리가 태그된 콘텐츠, 취재 노트, 주석 삽입, 소스, BGM, 백 그라운드 비디오 등이라 부르는, 책을 둘러싼 일종의 ‘환경’을 말한다. 콘텍스트는 콘텐츠를 컨테이너, 다시 말해 완성 원고를 종이책이라는 용기에 넣는 단계에서 떨어져 나간다. 

― 컨테이너가 정형화된 현재의 워크플로는 콘텐츠와 콘텍스트의 양쪽을 제한하는 이른바 시대착오의 산물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콘텍스트를 콘텐츠와 함께 보존해 발견성과유용성을 강화하는 콘텍스트의 모습을 갖춘 워크플로가 필요하다. (중략) 워크플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출판사 규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큰 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현재 한국 출판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변화는 사실상 이러한 워크플로의 수립을 겨냥하고 있다. 이를 조직적, 전략적으로 행하는 곳과 무의식적, 추수적으로 행하는 곳이 있을 뿐이다. 어느 쪽이든 이는 출판을 근본적으로 혁신한다. 세계가 바뀌고 시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변화를 아주 깊은 차원에서 숙고하는 것은 오늘날 모든 출판인의 의무이다.

― 컨테이너에 제한되는 것은 동시에 독자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략) 독자는 사용성이 좋은, 특히 정보가 많고 접속도 편한, 나아가 인터넷과 직결된 콘텐츠를 원한다. // 책과 웹의 재매개에 대한 것은 기획회의 이번 호에 실린 원용진의 글을 참고하라.

― 전통적인 출판사의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이 시급한 때이다. 책 중심의 모델에서 독자를 중심으로 하는 모델로 전환해야만 한다. // 앞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회사의 중심에서 고민하지 않는 출판사는 모조리 사라질 것이다. 이 일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이라면, 상품이든, 운영이든, 서비스든, 그 어떤 부분에서라도 전략적 추구가 없는 출판사에 결코 몸을 두지 않게 될 것이다.

―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살만 루슈디의『하룬과 이야기 바다』(김석희 옮김, 문학동네, 2012)라는 책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하룬이라는 주인공이 말을 잃어버린 이야기꾼 아버지의 과거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물의 요정과 만난다. 요정은 하룬에게 이야기 바다에 대해 들려준다. 무력감과 좌절감에 비통해 하던 하룬은 점차 바다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수억 개의 물결이 서로 다른 곳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색도 다르고 다 다른 그것들이 서로 엉켜서 숨 막히도록 복잡한 바다의 무늬를 짜고 있었던 것이다. // 이 작품을 읽고 싶다.

― 출판사는 독자의 니즈를 종이책이라는 컨테이너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서 독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검색이다. 검색이 의존하는 것은 콘텍스트이다. 검색 엔진을 이용하는 독자는 어떤 특정한 책을 찾는다기보다 어떤 질문에 어떤 대답과 해결책, 재미가 있는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책과 같은 콘텐츠를 찾아 구입을 위해 검색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 이것은 고통스러운 결론이자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다. 앞으로 편집은, 여전히 그렇게 부를 수만 있다면,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의 일이 될 것이다.

― 콘텐츠가 풍부한 시절의 편집자의 역할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다. 편집자가 가져야 할 기능은 ‘출판물의 선정법’이 아니라 출판물의 ‘발견법’이다. 이것은 출판 패러다임의 역전이다. 우리는 콘텍스트에서 시작해 적절하게 링크가 걸린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 출판해 나갈 필요가 있다. // 우리가 콘테이너 제작 전문가인 한, 그리고 그 역할을 계속해서 요구받는 한, 출판은 근본적으로 혁신될 수 없다. 혁신이 없다면 쇠퇴할 것이고, 쇠퇴하다 보면 도태될 것이다. 그 빈 공간은 새로운 세대가 점령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우리는 제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 콘텍스트에 의해 디지털 시대의 독자는 책을 발견하고 이용하며 콘텐츠를 재이용한다. 출판사에게 콘텍스트 투자는 필수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출판사의 관심은 경비 삭감 방법의 모색에 맞춰져 있다. 그 이유는 종이책이라는 주력 제품에 대해 갖는 집착과 성장 욕망이다. 좋은 종이책을 만들려는 노력은 출판업을 단일 콘텐츠의 창조, 제작, 유통으로 특화한다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잃어버린 것은 유연하고 찾기 쉬우며 접근성이 편한 콘텐츠의 제작이다. 

― 콘텐츠가 단순히 제품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콘텐츠는 독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치 사슬의 일부이다. 독자는 출판사가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 기대하면서 자기가 편한 시간에 편한 곳에서 대답을 듣지 못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다.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라면서 출판사에 쓴 소리를 한 뒤 돌아서 버릴 것이다. // 이 사실이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인식의 전환 없이는 비용과의 싸움에서 출판은 틀림없이 패배할 것이다. 이는 이제 모든 출판사를 위한 표준 사업 모델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서점이 솔루션(발견성)의 주요 제공자가 아니라 솔루션의 혜택을 나누어 먹는 존재로 축소되는 것이 오늘날 서점이 몰락하는 참된 이유이다. 따라서 서점에 발견성을 의존하는 출판사는 곧 붕괴할 것이다.

― 구조적 관점에서 검색 기능에 적합하지 않은 콘텐츠는 검색 결과 페이지에 표시되지 않는다. 콘텍스트 관점에서는 콘텐츠의 깊숙한 곳까지 일관해서 태그 되어 있지 않으면 콘텐츠가 독자의 눈에 띌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만다.

― ‘제품’ 중심의 비즈니스에서 ‘서비스’와 ‘솔루션’ 중심의 비즈니스로 이행하는 출판사는 적어도 다음 네 가지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 ✤ 콘텐츠는 개방되어야 하고 접속 가능하며 상호 호환이 가능해야만 한다. 예외는 없다. ✤ 콘텍스트를 더욱 유용하게 쓰고 더 나은 발견성의 향상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 출판사의 진정한 상대는 이미 싼 툴이나 무료 툴을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콘텐츠 종수를 줄이려는 시도에 의해 경쟁력을 얻으려는 전략은 쓸데없는 노력이다. 출판사에게 전략은 콘텐츠로의 승부, 즉 그 이용법을 확대하는 전략이어야 한다. ✤ 콘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관리 툴을 독자에게 제공 가능한 출판사는 유리한 입장에 선다.

― 개혁은 힘든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중략) 디지털 시대는 출판사가 만드는 이야기 위에 새로운 출판을 세울 수 있는 큰 기회이다. 이것은 콘텍스트 위에 선 출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