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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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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나중까지 간직되는 건 깊이 음미된 순간 뿐, 그래서 꽃에는 시가 필요하다 금요일 저녁 퇴근할 때 본 양재천 풍경은 아직 황량하더니,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벚나무가 일제히 꽃을 열었다. 뻗어나간 나뭇가지 사이로 군데군데 검은 흙이 드러난 공원 풍경이, 주말 사흘 만에 붉고 흰 물감을 공중에 흩뿌린 것 같다. 안개가 일어선 듯 는개가 내리는 듯 눈을 감아도 어두워지지 않고 여전히 사물거린다. 헤어져 사흘이면 선비를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자연 또한 며칠이면 눈을 떼지 못할 변화를 일으킨다. 하기야 인간에게 있을 법한 일이 어찌 자연에 없겠는가. 습관적 인식을 무너뜨리고 정해진 경로를 이탈한 현실의 도래가 기적이라면, 비루한 일상 탓에 모르는 체 잊고 지낼 뿐 신은 어디서나 목소리를 내고 기..
선생님 나쓰메 소세키 ― 데라다 도라히코의 『도토리』를 읽고 선생님 나쓰메 소세키―데라다 도라히코의 『도토리』를 읽고 오랜만에 말 그대로 수필집을 후루루 읽었다. 데라다 도리히코의 『도토리』(강정원 옮김, 민음사, 2017)이다. 진주에 문학 강연을 다녀온 후, 피곤해서인지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서, 문득, 화장실에 놓아두었던 것을 들어서 훑어 읽다가 잠들었는데, 새벽에 읽어나 마저 읽었다. 솔직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느낌,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자유롭게 문장들이 사물로, 사건으로 옮겨 다니는 그야말로 수필(隨筆)의 전형이라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물리학자로 일본 근대수필의 한 봉우리. 자연과 인생의 접점을 응시하는 시선이 웅숭깊다. 가령, 초신성 폭발을 본 후에 쓴 「신성」의 한 구절은 물리학자다운 매력이 넘쳐났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말은 단지 영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