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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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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언제 시작하는가 입춘대길(立春大吉).봄이 나타나니 크게 길하리라. 문에 붙은 글씨가 씩씩하고 정갈하다. 삿된 기운은 그치고, 더러운 먼지는 돌아서라. 강병인 선생의 글씨다. 글자는 뜻을 전하는 수단이지만, 글씨는 인간을 세우는 예술이다. 선생은 기계 글자로 가득한 차디찬 세상을 인간의 글씨가 넘치는 따뜻한 세계로 바꾸는 일을 지금껏 해 왔다. 작은 인연을 기억해 해마다 기운찬 글씨를 보내는 선생으로부터 항상 나의 봄은 시작한다. 나아가 방을 단단히 붙이고, 돌아와 시를 읽으며 봄을 맞이한다.퇴계 이황의 봄은 언제 시작되는가. 근심 가득한 한밤중, 홀로 잠 깨어 서성이는데, 바람이 매화 향기를 뜰에 채울 때다. 기적을 만난 입술이 감탄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이룩한다. 홀로 창에 기대니 밤기운 차가운데(獨倚山窓夜色寒)매화가..
[논어의 명문장] 후생가외(後生可畏, 젊은이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뒤에 오는 사람이 지금 사람만 같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마흔 살 쉰 살이 되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子曰:“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矣.”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성어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공자가 자신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안회(顔回)를 염두에 두고 했다는 설이 있다. 옛것을 숭상했던 공자로서는 예외적이다. 제자들을 격려하면서 한 말로, 젊은이로서 앞날이 많고 힘이 넘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학문의 도를 얻기 위해 거듭 노력해 마흔이 될 무렵에는 그 이름이 저절로 알려지기를 바라라는 뜻이다. 리링에 따르면, 공자는 “그..
‘조선 최고 지식인’ 추대는 정쟁(政爭)의 산물 두 주에 한 번씩 《문화일보》에서 신간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다. 빠르게 책을 읽고 이를 서평이라는 형태로 남기는 것은 여러 번 밝혔지만, 내게는 또 다른 즐거운 모험이다. 편집자 일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책을 읽어 왔고, 또 기꺼이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책을 골라서 읽어 왔기에 읽기 자체는 그다지 모험이 아니다. 거기에 쓰기가 덧붙은 것은 아직 익숙지만은 않지만, 또 평생 늘 해 왔던 일이기도 하다. 지난 주에 읽은 책은 연세대 최연식 교수의 『조선의 지식계보학』(옥당, 2015)이다. 니체가 생성하고 푸코가 생각의 도구로 발전시킨 학문인 ‘계보학’을 이용해서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하서 김인후 등이 조선 최고의 지식인으로 손꼽히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말로 물어뜯고 위협하고 피로 얼룩져..
교육에 대하여(김정희) 모든 사람들이 아이였을 때에는 총명한데, 이름을 기록할 줄 알만 하면 아비와 스승이 ‘경전의 주석’과 ‘과거 시험에 응시할 자들의 위해 모아놓은 어려운 어구 풀이’들만을 읽힘으로써 그 아이를 미혹시키는 바람에, 종횡무진하고 끝없이 광대한 고인들의 글을 읽지 못하고 혼탁한 흙먼지를 퍼먹음으로써 다시는 그 머리가 맑아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재설(人才說)」(추사 김정희) 읽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 따라 가지 못한다. 시간을 쪼개서 간신히 읽을 뿐, 블로그에 정리할 짬을 내기가 정말 어렵다. 올해 열다섯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길 위의 인문학』(경향미디어, 2011)이다. 구효서, 한명기, 신창호 등이 독자들과 함께 인문학의 현장을 답사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한 강연 기록을 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