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자

(5)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 학이(學而) 편에 대하여 1 학이(學而) 편에 대하여 『논어』는 한 편 한 편이 체계적으로 서술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을 끌어 모은 책이고, 이를 지금처럼 스무 편으로 편집한 것도 아주 후대의 일입니다. 게다가 각 편에 실린 글을 숫자도 일정하지 않고 내용도 일관성이 없습니다. 편명 역시 맨 앞에 나오는 두세 글자를 따서 제목으로 삼았을 뿐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학이(學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고 해서, 이 편에 공부에 대한 글이 모여 있는 건 아닙니다. 공부에 대한 글은 여섯 편뿐이고, 나머지는 공부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스스로 “배우기를 좋아한다(好學)”고 했습니다. 『논어』에 이 말은 열여섯 번이나 나올 정도입니다. 『논어』가 「학이」 편으로 시작한 것은 아마 이 때문일 듯도 합..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지기소지(知其所止, 그 머무를 곳을 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아침 9시부터, 홍동밝맑도서관에서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사서(四書) 중 『대학』을 읽고 있습니다. 그 공부한 기록을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지금 경(經)은 모두 읽고 전(傳)의 세 번째 장을 읽는 중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나라 땅 천 리에 오직 백성들이 머무르고자 하는구나.”라고 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지저귀는 노랑 새여, 언덕 귀퉁이에 머무는구나.”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머무를 바에 있어서 그 머무를 곳을 아나니, 사람으로서 어찌 새만 같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삼강령(三綱領) 중 지(止)의 뜻을 설명하는 구절들입니다. 고본 ..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왕수인(王守仁)의 산속에서 제자들에게(山中示諸生) 산속에서 제자들에게왕수인(王守仁) 개울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나니물이 흘러감에 마음도 같이 한가롭다.산 위에 달이 떠오르는 것도 몰랐는데,솔 그림자 떨어져 옷 위에 얼룩지네. 山中示諸生 溪邊坐流水, 水流心共閑. 不知山月上, 松影落衣斑. 오늘 읽을 한시는 왕수인(王守仁, 1472~1529)의 「산 속에서 제자들에게 주다(山中諸示生)」라는 명나라 때 시입니다. 왕수인의 호는 양명(陽明)입니다.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로 앎과 함이 하나라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시는 자신의 깨달음을 함축해서 전하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어떤 뜻에서 그런지 차분히 감상해 보겠습니다.먼저 왕수인의 사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그 역시 주자의 학문을 깊이 숙고하는 데에서 공부를 ..
[논어의 명문장] 승부부해(乘桴浮海,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간다면, 나를 따를 사람은 아마 유(由, 자로)이리라.”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가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낫지만, [뗏목 만들] 나무를 취할 곳이 없구나.”子曰:“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공자는 천하를 편력했으나 등용되지 못하여 뜻을 펼칠 수 없었다. 희망에 지친 공자는 작은 뗏목이나 타고 바다를 떠돌며 세상 밖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이때에도 따를 사람은 자로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로에 대한 굳은 믿음과 함께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좌절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행동의 인간’이었던 자로는 공..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29일(수) 새 소설 『혁명 ―― 광활한 인간 정도전』의 출간을 앞두고 탁환이 찾아와서 술을 마시느라 어제는 글을 쓰지 못했다. 아직도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 작취불성(昨醉不醒). 술만 마시면 거의 이러는 것을 보면 이제 술과 정말로 이별할 때가 된 듯하다. 읽던 책들을 계속 읽어 가면서 새로운 책을 몇 권 호시탐탐 엿보는 중이다. 『헤밍웨이 단편선』(김욱동 옮김, 민음사, 2013)을 짬날 때마다 한 편씩 읽고 있다. 건드리면 주르르 모래로 쏟아질 듯한 건조한 문체의 극단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극도로 절제된 감정, 사건의 적요(摘要)만 따르는 냉혹한 시선……. 읽다 보면 저절로 숨이 막혀 오다가 어느새 인생의 달고 쓴 맛이 느껴지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고 만다. 사색이나 표현이 아니라 건조와 속도로 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