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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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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종이를 위한, 종이에 의한 애도와 비탄과 애처로움. 시의 한 종류인 엘레지의 특징들이다.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사자를 위한 송가(送歌)나 애가(哀歌)로 쓰인다.종이가 죽었단 말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종이와 같은 불멸의 물체가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맙소사, 말도 안 돼! 종이가 죽었다면 당연히 무척이나 슬프겠지만, 이런 일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페이퍼 엘레지』(홍한별 옮김, 반비, 2014)에서 영국의 작가 이언 샌섬은 ‘엘레지’라는 제목을 붙이고는 이미 사망 통지를 받아 버린 종이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기록해 나간다. 종이가 죽고 인간이 살아남았다면(정녕 그럴 수 있기만 하다면), 어둡고 우울한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아마도 ‘살아남은 자의 변명’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제목의 어두움, 그러니까 애도..
슈타이들조차 책을 만드는 데에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슈타이들조차 책을 만드는 데에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대림미술관의 슈타이들 전시회를 다녀와서 전시회 관람을 그 자리에서 끝내는 것은 대개의 경우 무척 어리석은 일이기 쉽다. 물론 현장의 생생함이 만들어 내는 활기 찬 리듬,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채와 그들을 빚어 내는 공간의 놀라운 조화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장의 인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법이라서 며칠 또는 몇 주의 시간이 지나면 메모 몇 줄과 머릿속에서 공명하는 몇 덩이 생각들로 약화된다. 윤곽선은 희미해지고 느낌은 잔잔해진다. 현장의 감격은 사라지고 냉냉한 분석만이 남는다. 그러나 나는 또 알고 있다. 인상이란 우리를 속이기 쉽다는 것을, 진정한 전시회는 도록을 읽는 육체 노동과 사색의 시간을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필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