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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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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오두막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부잣집 막내아들이었다. 비트겐슈타인 집안은 19세기에 양모 교역과 철강 산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쌓음으로써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비트겐슈타인 성에는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등이 드나들면서 연주하고, 구스타프 클림트가 누나 마르가레테의 결혼 기념 초상화를 그릴 정도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른바 ‘엄친아’였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버트런드 러셀에게 철학을 배웠다. 머리가 좋았다. 스승조차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스물아홉 살에 철학사상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인 『논리철학논고』를 썼다. 이 책은 철학 탐구의 대상을 인간과 세계의 문제에서 언어의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문제를 올바로 보는 법을..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0] 기우불가급야(其愚不可及也) _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5-21 공자가 말했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를 드러내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음을 보였다. 그 지혜는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子曰, 甯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은둔과 출사의 때를 잡는 일은 정말 어렵다. 공자는 위나라 대부 영유의 예를 들어 나아감과 물러섬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영유에 대한 공자의 품평은 세간의 상식을 파괴한다. 흔히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뒤로 물러서 몸을 지키고, 세상에 도가 바로 섰을 때에는 나아가 뜻을 펼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유는 반대로 행하면서 살았다. 그는 나라의 정치가 잘될 때에는 한 걸음 물러서서 스스로 공적을 자랑할 일을 하지 않았다. 흐르는 대로 두어도 세사가 이치에 맞을 것이기에 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