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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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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과 외로움 그동안 스스로 결정해서 혼자 먹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왜 혼자 밥을 먹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현미밥을 씹듯 오래 곱씹었다. 그러다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관계에서 추방되어 혼자 먹게 되었다고. 혼자 먹는 일이 자유로운 선택이었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먹겠다는 선택 역시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누군가와 먹고 싶다고 해서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았다. 혼자 먹는 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제되는데, 홀로 밥 먹는 게 간편하다고 스스로 정당화했다. 인간관계를 상실해서 고독하게 밥 먹고 있다고 자각하는 건 괴로우니까. 이러한 정당화를 간파한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시장에 종속된 채 고독과 고립에 굴복하도록 강요받는데, 이때 자신의 고립을 자신이 선택한..
온정균(溫庭筠)의 「정서번(定西蕃) 3」 정서번(定西蕃) 3 온정균(溫庭筠) 내리는 보슬비, 새벽의 꾀꼬리, 봄날은 저무는데(細雨曉鶯春晩), 옥 같은 사람, 눈썹 같은 버들잎(人似玉, 柳如眉), 더없이 그립구나(正想思). 비단 휘장, 비취 주렴, 걷으려 하는데(羅幕翠簾初捲), 거울 속에는 꽃 가지 하나 놓여 있네(鏡中花一枝). 변방 소식에 애간장이 끊어지는데(腸斷塞門消息), 기러기마저 드물게 날아오누나(雁來稀). ===== 제목의 정서번(定西蕃)은 당나라 말기, 송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노래 곡조 중 하나이다. 사패마다 글자 수가 정해져 있어서 여기에 맞추어 가사를 지어야 했다. 이 작품은 변방으로 군역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애절하게 그려낸다. 시절은 봄날이다.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새벽, 짝을 찾는 꾀꼬리 소리에 아내는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