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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멤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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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비극의 도시 - 문학과 도시 (1) 인간 존재는 ‘죽다, 넘어서다, 모여 살다’ 셋으로 압축된다. 길어야 100년, 인간의 삶에는 끝이 있다. 영원을 누리는 신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우리의 물리적 생명은 시간의 침습을 받아 죽음을 향해 간다. 유한성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특징이다. 그러나 인간은 패배자가 아니다. 끝이 있음을 알기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머릿속에서 보는 힘을 익혔다. 꿈꾸고 상상하면서 한 걸음 더,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역량은 우리를 독특하게 한다. 넘어서는 힘은 인간을 창조자로 만든다. 먹지 못할 것을 먹게 하고, 살지 못할 곳에서 살게 하고, 죽을 때를 생명의 시간으로 바꾸어 준다. 인간은 홀로 넘지 못한다. 영웅 숭배는 역설이다. 재앙을 혼자 힘으로 돌파하는 인간의 희소를 상징한다. 인간은 모여 있..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매주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에는 서지현 검사의 일을 계기로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오이디푸스, 그대가 왕이지만 답변할 권리만은 우리 두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할 것이오.” 테이레시아스가 말한다. 테바이를 덮친 전염병의 진실을 말하러 찾아온 예언자를, 성난 군주는 뇌물을 받아먹고 지껄이는 헛소리로 몰아붙인다. 그러자 테이레시아스는 자기가 오이디푸스의 노예가 아니라면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장면이다.파르헤시아(Parrhesia). 희랍어로 ‘진실을 모두 말하기’라는 뜻이다. 성서에서는 ‘담대함’으로 옮긴다. 테이레시아스 같은 태도를 말한다. 정..
[풍월당 문학강의] 피의 값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잘 알아두시오.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나도 모르겠소. 내 비록 고삐를 잡고 있기는 하나 말들은 이미 주로 밖으로 멀리 벗어난 느낌이오.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고, 내 가슴속에는 벌써 공포가 노래 부르며 격렬한 춤을 추려 하니 말이오. 아직 정신이 있을 때 친구들에게 말해두고 싶소. 내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정당한 행동이었소.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1021~1027행)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몫의 운명을 안고 태어납니다.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고 자기 운명을 새롭게 쓰려는 영웅들의 분투는 비극적 파멸을 불러들이죠. 하지만 영웅들의 불쌍한 최후는 우리에게 슬픔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터질 듯한 희열과 고귀함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