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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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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매주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에는 서지현 검사의 일을 계기로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오이디푸스, 그대가 왕이지만 답변할 권리만은 우리 두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할 것이오.” 테이레시아스가 말한다. 테바이를 덮친 전염병의 진실을 말하러 찾아온 예언자를, 성난 군주는 뇌물을 받아먹고 지껄이는 헛소리로 몰아붙인다. 그러자 테이레시아스는 자기가 오이디푸스의 노예가 아니라면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장면이다.파르헤시아(Parrhesia). 희랍어로 ‘진실을 모두 말하기’라는 뜻이다. 성서에서는 ‘담대함’으로 옮긴다. 테이레시아스 같은 태도를 말한다. 정..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김명남 옮김, 창비, 2016)를 읽다 연휴에 틈틈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김명남 옮김, 창비, 2016)를 읽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이 뛰어난 영어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아프리카적 현실 속에서 인간적 삶의 위엄을 이룩하려는 인물들을 작품으로 그려왔다. 이 책은 지나치게 소품이고, 페미니즘이라는 상식적 가치를 다루지만 저자 특유의 이야기 솜씨가 읽기에 리듬과 활기를 부여한다. 스무 살이 된 딸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하려고 한다.그러나 이 책을 이야기할 때에는 아디치에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아직 우리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빠짐없이 번역되었기에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처음 접할 때부터 그 작품들이 마음에 들었고, 한국에 소개하기로..
김경욱의 『야구란 무엇인가』(문학동네, 2013)를 읽다 1지난주 지하철 퇴근 시간을 이용해 김경욱의 『야구란 무엇인가』(문학동네, 2013)을 모두 읽었다. 적절한 주변의 소음이 아니었다면 이 끔찍하고 처연하며 아릿아릿한 이야기를 끝내 참을 수 없어서 울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이것은 김경욱 소설의 새로운 전개다. ‘광주’라는 소재의 심각함에서도 그렇고, 복수와 화해라는 주제의 묵직함에서도 그렇고, 분열증과 편집증이라는 심리의 전개에서도 그렇고, 말더듬과 초단문이라는 발화의 특이함에서도 그렇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김경욱은 갑자기 젊음의 꼬리표를 떼고 역사와 윤리가 교차하는 낯선 영역 속으로 투신해 버린 것이다. 읽으면서 여백에 메모해 둔 것들을 여기에 기록해 둔다. 2그 누구도 복수로서의 광주란 무엇인가를 그다지 열심히 묻거나 탐구하지 않았다.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