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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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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필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제 몸으로 하는 공부가 시대의 한 대세로 올라선 느낌이다. 단지 정보를 눈으로 읽어 받아들이고, 머리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드려 쏟아내는 일만으로 사람들은 헛헛할 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라고 썼다. 알에 둘러싸인 채 태어나서 껍데기를 깨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간절하고 안타까운 투쟁이야말로 인생에 진정한 활기를 불어넣는 행위다. 이 본능적 투쟁은 인간에게서 사라질 수 없다. 설령 잠시 약화되더라도 반드시 되돌아온다. 인간은 이러한 투쟁 없이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연결시대에 정보 폭풍 속에서 한없이 시들어진 인간 본성을 편집은 어떻게 책으로 가져와 다시 일으킬..
[연암집을 읽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초정집서(楚亭集序)에서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논하는 자들은 반드시 옛 글을 본받아야[法古]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옛 글을 베끼고 본뜨면서도 세상이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중략) 그렇다면 새롭게 창조해야[刱新] 옳은가. 그래서 괴이하고 거짓되며 현혹하고 편벽한 글이 있어도 세상이 이를 두려워할 줄 모르게 되었다. (중략)그러면 어찌 해야 옳은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을 쓰지 말아야 하는가?아아, 옛 글을 본받아야 한다는 사람은 자취에만 구애되는 것이 병이고,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것이 근심이다. 진실로 옛 글을 본받으면서도 [오늘에 맞추어] 변화할 줄 알고, 새롭게 창조하면서도 [옛 글처럼] 전아할 수 있다면, 요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