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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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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를 추구합니다 (청주 강강술래) 잠든 거인은 저절로 깨어나지 않는다. 낡은 램프는 내버려두면 낡은 램프일 뿐이다. 알라딘이 낡은 옷소매로 문질러 광을 낸 후에야 거인이 풀려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책은 사람 앞에 놓인 램프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눈을 옮기지 않으면, 안에 잠든 거인을 해방시키지 못한다. 도서관은 각종 마법 램프들의 전시장이다. 000번 총류에서 900번 역사에 이르기까지 램프들이 잘 분류된 채로 소원을 들어주려고 알라딘들을 기다리는 중이다.램프에 거인을 잠들게 만든 마법사들은 어떨까. 가끔이라도 램프를 문질러 소원을 빌고는 있는 걸까. 요리사가 집에서 요리를 하는 법은 드물고, 교사가 자식 가르치는 건 어려운 일처럼 이들 역시 자신을 위한 램프 닦기를 힘겨워할까. 책의 프로페셔널, 즉 저자, 편집자, 평론가, ..
종이의, 종이를 위한, 종이에 의한 애도와 비탄과 애처로움. 시의 한 종류인 엘레지의 특징들이다.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사자를 위한 송가(送歌)나 애가(哀歌)로 쓰인다.종이가 죽었단 말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종이와 같은 불멸의 물체가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맙소사, 말도 안 돼! 종이가 죽었다면 당연히 무척이나 슬프겠지만, 이런 일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페이퍼 엘레지』(홍한별 옮김, 반비, 2014)에서 영국의 작가 이언 샌섬은 ‘엘레지’라는 제목을 붙이고는 이미 사망 통지를 받아 버린 종이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기록해 나간다. 종이가 죽고 인간이 살아남았다면(정녕 그럴 수 있기만 하다면), 어둡고 우울한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아마도 ‘살아남은 자의 변명’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제목의 어두움, 그러니까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