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람

(2)
바람과 물의 언어로 기록한 우포늪의 풍경 손남숙의 『우포늪, 걸어서』(목수책방, 2017)는 물과 바람의 언어로 쓰여 있다. 냉정한 과학적 탐구의 언어는 아니다. 차라리 은근한 사랑의 언어라고 부르고 싶다. 우연히 펼친 후 몇 줄 읽다 보니, 마음이 책 속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이어서 고리가 걸리는 느낌이 읽기를 재촉하면서 어느 순간 마지막까지 이르렀다. “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바람과 햇빛과 조응하면 물풀이 일렁이는 늪가를 부드럽게 간질이고 새들의 발가락을 꼼꼼히 살핀다.” 이런 문장은 사랑스러워 책 속 어딘가에서 한 줄 더 찾아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독자의 머릿속에 공감각을 일으키는 아주 가벼운 시적 문장들.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 습지다. 저자 손남숙은 근처의 창녕에서 나고 자랐다.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우포늪..
피츠제럴드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읽다 벼르던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두 주 전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교정을 끝마치고 난 후, 기왕에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3) 말고 피츠제럴드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나온 『피츠제럴드 단편선 1』(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5)와 『피츠제럴드 단편선 2』(한은경 옮김, 민음사, 2009)를 읽으려고 꺼내 놓았다가, 곧 마음을 바꾸어서 피츠제럴드의 첫 번째 단편집으로 예전에 편집 참고용으로 사 두었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이번 주 내내 읽었다. 가장 거칠고 미숙했던 시절의 피츠제럴드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이 나온 것은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