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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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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명문장] 욕거구이(欲居九夷, 구이 땅에서 살고 싶다) 선생님께서 구이(九夷) 땅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 [그러자] 누군가 말했다. “누추한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거기에 산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공야장」 편에 나오는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돈다면[道不行, 乘桴浮于海]”이라는 구절과 같이 읽어야 한다. 사실 공자는 혼란한 세상을 떠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천하를 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포부가 수용되지 못하는 현실에 때때로 좌절하곤 했다. 그래서 탄식하듯이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선해서 읽어야 할 것은 ‘구이(九夷)’의 장소적 실체가 ..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30일(목) 명절 첫 날이라 오늘을 하루 종일 읽던 책들을 내키는 대로 읽었다. 방 청소를 하고 읽으려고 쌓아 둔 책들을 정리했다. 읽는 속도가 책이 쌓이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서 방이 점점 비좁아지는 중이다. 조만간 과감하게 읽지 않는 책을 버려야 할 때가 올 것 같다. 지셴린의 『인생』(이선아 옮김, 멜론, 2010)을 완독했다. 사유의 대가답지 않은 가벼운 에세이인데, 오히려 그 소박함과 평범함으로 사람을 끄는 데가 있다. 내용이 일부 중복되는 것은 대부분이 신문 등에 연재된 짧은 글을 모은 탓이다. 이 점은 대단히 아쉬웠다. 중국 지식인들의 장점이라면 자신의 글에 춘추 전국에서 명청에 이르는 명문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함으로써 그 논지에 품격을 불어넣고 깊이를 더한다는 점이다. 지셴린이 자주 인용하는 도연명이나 ..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29일(수) 새 소설 『혁명 ―― 광활한 인간 정도전』의 출간을 앞두고 탁환이 찾아와서 술을 마시느라 어제는 글을 쓰지 못했다. 아직도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 작취불성(昨醉不醒). 술만 마시면 거의 이러는 것을 보면 이제 술과 정말로 이별할 때가 된 듯하다. 읽던 책들을 계속 읽어 가면서 새로운 책을 몇 권 호시탐탐 엿보는 중이다. 『헤밍웨이 단편선』(김욱동 옮김, 민음사, 2013)을 짬날 때마다 한 편씩 읽고 있다. 건드리면 주르르 모래로 쏟아질 듯한 건조한 문체의 극단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극도로 절제된 감정, 사건의 적요(摘要)만 따르는 냉혹한 시선……. 읽다 보면 저절로 숨이 막혀 오다가 어느새 인생의 달고 쓴 맛이 느껴지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고 만다. 사색이나 표현이 아니라 건조와 속도로 승부..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27일(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함부로 묻지 못할 질문이다. 사람들은 이 고통스러운 질문이 자신 앞에 제발 다가오지 않기를 끊임없이 기원한다. 지독한 어리석음! 그러나 살아가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이 질문을 회피할 길은 없다. 이것은 세계의 어둠 속에서 불쑥, 그러나 치명적으로 우리를 엄습한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자기 자신의 빛이 없다면 타인의 빛으로 자신을 밝힐 수는 없다.”(『라 셀레스티나』) 오늘 후배랑 아주 길게 이야기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오늘부터 20세기 중국 최대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인 지셴린(季羨林)의 에세이 『인생』(이선아 옮김, 멜론, 2010)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알라딘 세일 때 샀던 책 중 하나다. 베이징대의 터줏대감 중 한 사람으로 ‘국학대사(國學大師)’라고 불린 인..
[한시 읽기] 도연명, 술을 마시고(飮酒) 제5수 飮酒 陶潛 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問君何能爾心遠地自偏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山氣日夕佳飛鳥相與還此中有眞意欲辨已忘言 (1) 음주(飮酒) : 전체 스무 수의 연작으로 이 시는 그 중 다섯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에는 “내가 한가하게 살다 보니 기쁜 일이 적은데 더하여 밤도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좋은 술을 얻어 밤이면 마시지 않을 때가 없었다. 내 그림자를 돌아보며 홀로 모두 마시고 나면 어느새 취하곤 했다. 취하고 나서 곧 몇 구절 적은 후 스스로 즐거워했는데, 종이에 쓴 것은 많아졌지만 글에 차례가 없었다. 이에 친구에게 부탁해 이들을 쓰게 하니 이는 다만 함께 즐기고 웃으려 했을 뿐이다(余閒居寡懽, 兼此夜已長. 偶有名酒, 無夕不飮. 顧影獨盡, 忽焉復醉. 旣醉之後, 輒題數句自娛, 紙墨遂多, 辭無詮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