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과 6펜스

(2)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당신에게 _아오노 슌주의『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서평 웹진 A 코믹스에 실린 일본의 신예 만화가 아오노 슌주의『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세미콜론)의 서평이다. 시골 마을 도서관으로 옮기면서 챙겨 왔는데 읽다가 격하게 감동했다. 마침 완간이 되면서 후배의 권유로 서평까지 쓰게 되었다. 아래에 옮겨 싣는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겠다고? 그런 말을 할 나이가 아니잖냐?”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에도 정말 적절한 나이가 있는 걸까? 직장 생활 15년 차, 마흔 살이 되었다. 특별한 불만은 없었지만 이리저리 재지 않고 갑자기 사표를 냈다. 늙은 아버지와 고등학생 딸이 있고 아내는 오래전에 가출했다. 얼굴은 한물갔고 몸매는 배불뚝이, 아저씨 냄새가 물씬 난다. 이런 몸으로, 반드시 어떻게 될 것이라는 자신도 없이, 그냥 이렇게 살면 안..
거대한 여백 - 디자인에 대한 몽상(《디자인》 2012년 7월호) 이 글은 작년 7월에 월간 《디자인》에 실었던 글이다. 게재 직후에 원고 파일을 실수로 삭제하는 바람에 사라졌는데, 북디자인과 관련해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문득 발견했다. 과거에 쓴 글이 어느 날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다. 여기에 옮겨 둔다. 거대한 여백 디자인에 대해서 쓰려 하니 가장 먼저 거대한 여백이 떠오른다. 순전한 흰색, 어떤 문자도 문양도 그 위에 그려질 수 없는 절대 공간. 한창 산을 좋아했을 때, 새벽에 텐트 문을 열고 나오면 첫 빛으로 자태를 드러내면서 망막을 하얗게 태우고 언어의 길을 단숨에 끊어버렸던 눈 내린 직후의 흰색 산야. 어느 한밤중 문득 자다 일어나 꿈속에서 썼던 아름다운 시를 끼적여보려고 대학 노트를 여는 순간, 형광등 아래에서 날카롭게 빛을 뿜어내 머릿속의 리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