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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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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는 언제나 읽기에서 시작한다 글쓰기 전성시대다. 이처럼 많은 이가 온갖 곳에 다양한 글을 쏟아내는 시대는 역사상 없었다. 그러나 정작 좋은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은 듯하다. 글쓰기 강좌는 호황을 누리고, 관련 책의 판매 부수도 늘지만, 사람들은 자꾸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좋은 글을 쓰려면 단순한 요령을 넘어서는 더 큰 배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신혜경 옮김, 밤의책, 2022)에서 프랑스 페미니스트 철학자 엘렌 식수는 글쓰기가 H를 닮았다고 말한다. H는 “글이 오르내리는 사다리”를 말한다. 왼쪽 기둥(I)이 한 언어이고, 오른쪽 기둥(I)은 다른 언어이며, 둘을 이어주는 선이 있다. “글쓰기는 두 해안을 잇는 통로를 만든다.” 글쓰기는 널리 알려진 것과 아직 알려지지 않..
글쓰기는 우리를 바꾼다 『뉴욕 3부작』의 세 작품에서 화자는 모두 누군가를 추적하고, 흔적을 관찰하며, 그 결과를 꼼꼼하게 공책에 기록한다. 글쓰기는 잊힌 자아를 환기할 계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처음에 타인의 관찰로 시작된 기록은 사건 진행과 함께 묘하게 자신과 세계에 대한 기록으로 변해 간다. 블루의 말처럼, “길 건너에 있는 블랙을 염탐하는 일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저 남을 지켜보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일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현재만 존재하는 뉴욕의 속도에 포섭된 후, 블루한테는 한순간도 자신을 돌아볼 때가 없었다. 블루는 말한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오래도록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
완성작이 없으면 작가가 아니다(박찬욱) 박찬욱은 우선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의 의미를 일깨운다. 그는 “초보자의 문제는 장편 시나리오를 완성조차 못 한다는 것”이라며 “끝까지 써본 경험이 없다면 작가가 아니다. 나쁜 작가조차 못 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정 좋은 생각이 안 나면 ‘싸구려 클리셰’를 동원해서라도 신(scene)을 메워라. 끝까지만 갈 수 있다면 문제의 그 아쉬운 장면으로 돌아가 어떻게든 해결을 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박찬욱은 스토리텔러의 기본 자질과 관련해 “쉽게 만족하지 말고 기준을 높게 가져라”고 말한다. “‘이만하면 된 거 같은데…’라며 대충 타협하면 안 된다. 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들과 비교하며 작업을 하는데도 이 정도밖에 못 만들고 있다. 기준조차 낮다면 아무것도 안 된다.” ==== 이렇답니다. ..
옥스퍼드 학생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고등교육은 기존의 사유와 믿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반론을 증명해 내는 일인데,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대학들은 필연적으로 과학이든 예술이든, 또는 정치든 문화든, 또는 영향력 있는 사회의 집단이든 하나의 신념 체계이든, 대상을 불문하고 현재의 기득권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수전 세일) _리처드 도킨스 외, 『옥스퍼드 튜토리얼』, 노윤기 옮김(바다출판사, 2019)에서 ===== 옥스퍼드 튜토리얼은 교수나 강사 같은 전문가(튜터)와 학생이 일주일에 한두 번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학습하는 일종의 개인지도 과정입니다. 옥스퍼드 대학 수립되기 이전인 11세기부터 실시되었다고 전하며, 옥스퍼드대학 학생들은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니다. 학생이 자기가 정한 주제를 에세이로 써..
비틀린 삶의 축을 바로잡아줄 길잡이 《주간동아》 1126호(2018. 02. 14, 60~61쪽)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해 나온 책들 중에 연휴를 맞이해서 읽을 만한 책을 골라서 소개했습니다. 비틀린 삶의 축을 바로잡아줄 길잡이연휴에 꼭 손에 들어야 할 8권 책을 왜 읽는가.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지금에야 굳이 책일 까닭도 없다. 온라인 공간에는 평생 봐도 다 못 읽을 자료와 기록이 이미 즐비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생겨나는 중이다.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좋은 스승을 좇아 서점이나 도서관 등에서 열리는 강좌나 강연에 참석해도 좋고, 바란다면 여러 가지 동영상 강의를 이용할 수도 있다. 내용이 충실하고 수준 높기로 정평 난 강의만 챙겨도 이번 생을 채우고도 남는다.하지만 지식과 정보의 습득 말고 책을 읽는 더 깊은 이유..
[왜 지금 글쓰기인가]감정 들여다보고 생활 돌아보고…글로 ‘지금의 나’를 즐기다 《경향신문》 글쓰기 특집에 이런저런 말을 보탰습니다. 아래에 옮겨둡니다. [왜 지금 글쓰기인가]감정 들여다보고 생활 돌아보고…글로 ‘지금의 나’를 즐기다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일요일 저녁 6시. 최병진씨(37)가 집을 나선다. 텔레비전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주말을 붙잡으려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다. 다가올 월요일을 앞두고 마음이 조금씩 붐비는 시간이지만 집을 나서는 최씨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최씨가 향하는 곳은 서울 행당동에 위치한 ‘하숙공방’. 매주 일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이곳에서는 글쓰기 모임이 진행된다. 서울 송파구 최씨 집에서는 50분 가까이 걸리는 곳이지만, 물리적 거리나 시간이 부담스러웠던 적은 없다. “주중에는 일을 하니까 모임에 가기 힘들잖..
기자 헤밍웨이는 어떻게 글을 썼을까 기자 헤밍웨이는 어떻게 글을 썼을까― 사실을 말하기,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하기 “전쟁은 작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노년의 대가 헤밍웨이가 말한다. 확실히 그럴 만하다. 전쟁과 같은 끔찍한 경험은 작가에게 인생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 당신이 작게라도 매혹을 느꼈다면, 덧붙은 한마디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나는 전쟁을 깊이 증오합니다.”청년 헤밍웨이가 기자 생활을 했다는 것, 그리고 작가가 된 이후에도 때때로 종군 기자의 임무를 즐겼음은 잘 알려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었고, 스페인 내전에 직접 뛰어들어 반파시스트 전선에 섰다는 것은 ‘극한의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신화를 이룬다.헤밍웨이가 기자로 쓴 글이..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_ 실뱅 태송, 『여행의 기쁨』(문경자 옮김, 어크로스, 2016)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소로는 귀뚜라미 노랫소리에서 신의 음성을 들었다. 반 고흐는 전원에서 풍경의 역선(力線)들을 보았다. 네르발은 파리의 길들과 자기 영혼의 미로를 혼동했다. 풀카넬리는 황금비가 천체의 운행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암술을 둘러싼 꽃잎들의 배치도 주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고는 산사나무 향기가 별자리와 무관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견자(見者)’는 눈이 만족하는 곳에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지엽적인 것들을 모두 뒤져서 우주를 추격한다. 이것이 관찰에 적용되는 환유의 원리다. 여행자는 풀잎에서 우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평면구형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정신이 모래알 하나로도 충분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