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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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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이 언제나 정치를 이긴다 언젠가 관념 이외에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책을 쓴 루소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지. 그 책의 제2판은 초판을 비웃은 사람들의 가죽으로 제본되어 있었다네. (토머스 칼라일) 데이비드 밀러의 『정치 철학』(이신철 옮김, 교유서가, 2022)에 나오는 말이다. 밀러에 따르면, 정치적 삶에 직접 개입하고자 한 정치철학자들은 대개 실패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등 그들은 강력한 통치자에게 조언해 왔다. 그들의 조언은 정치를 실제로 바꿨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정치철학자들이 정치적 사건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바가 드문 이유는 그들이 정치인과 일반 대중 모두가 지니는 관습적 믿음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정치인이든 대중이든 정치 철학자의 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정치철학이 시간의 흐름과 더..
지구사의 지평에서 호모사피엔스 20만 년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책을 읽고 있는데, 아내가 묻는다. “옥스퍼드 세계사? 영국(서구) 중심주의 서술 아니야?” 역사를 제 입맛대로 농단해 왔던 서양 제국주의에 대한 의심과 회의, 이것이 오늘날 세계사를 대하는 독자들의 일반적이고 정당한 태도이다. ‘도대체 세계사가 가능할까?’ ‘설령 그런 게 있더라도 인종주의(민족주의)에 오염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세계사는 가능하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됨에 따라, 또 인류의 역사가 생명의, 지구의, 우주의 역사라는 거대사의 지평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짐에 따라, 세계사를 큰 흐름 위에서 기술하려는 시도들이 늘어 가고, 이에 대한 독자들 반응도 뜨겁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빅 히스토리』,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에 대한 열광은 ..
크노소스에서 비잔티온까지 열한 군데 도시로 본 고대 그리스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할 때, 어떤 책을 길잡이로 삼을 것인가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기초를 든든히 해두거나 방향을 제대로 잡아두지 못하면, 나중에 전혀 엉뚱한 곳에 가 있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느라고 더욱 큰 노력을 들이기 십상인 까닭이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입문서들은 오래된 지식만 담고 있어서 별로 흥미롭지 않고, 때로는 한쪽 입장에 치우친 경우도 많아서 선뜻 권하기 힘들다.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기획한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가 나온 이래, 이러한 고민은 씻은 듯 사라졌다. 몇 년 전부터 학생들과 입문 수업을 하거나 아이들한테 첫 공부를 권하려 할 때 선뜻 추천하는 도서가 이 시리즈의 한국어 번역판인데, 주로 교유서가의 ‘첫단추 시리즈’에서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