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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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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과 외로움 그동안 스스로 결정해서 혼자 먹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왜 혼자 밥을 먹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현미밥을 씹듯 오래 곱씹었다. 그러다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관계에서 추방되어 혼자 먹게 되었다고. 혼자 먹는 일이 자유로운 선택이었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먹겠다는 선택 역시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누군가와 먹고 싶다고 해서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았다. 혼자 먹는 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제되는데, 홀로 밥 먹는 게 간편하다고 스스로 정당화했다. 인간관계를 상실해서 고독하게 밥 먹고 있다고 자각하는 건 괴로우니까. 이러한 정당화를 간파한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시장에 종속된 채 고독과 고립에 굴복하도록 강요받는데, 이때 자신의 고립을 자신이 선택한..
독서, 고독한 싸움 우리가 그 책에 다가가는 도중에 아무리 꼬불꼬불 구부러지고 빈둥빈둥하고 우물쭈물하고 어슬렁어슬렁하더라도 최후에는 고독한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_버지니아 울프
고독에 대하여 고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독은 비와 같다. 고독은 바다에서 저녁을 향해 오른다. 고독은 아득한 외딴 평원에서 언제나 고독을 품어 주는 하늘로 향한다. 그러다 비로소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동틀녘에 고독은 비가 되어 내린다. 모든 골목이 아침을 향할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몸뚱어리들이 실망과 슬픔에 서로를 놓아줄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침대에서 자야 할 때, 고독은 강물이 되어 흐른다…… ==== 이 시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김재혁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3)에 실려 있다. 고독은 초기부터 릴케 시의 핵심 개념이었다. 1902년 스물일곱 살의 릴케는 낯선 도시 파리에서 이 시를 썼다. 릴케에게 파리는 눈부시게 황홀한 예술의 낮과 소외감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고독의 밤이 ..
“난 어쨌거나 좀 더 살아야 해요.” ― 루쉰의 『고독자』를 읽다 루쉰의 소설은 이미 모두 여러 번 읽었지만, 손에 새로운 번역본이 들어올 때마다 어떻게든 다시 읽는다. 이번에 읽은 책은 『고독자』(이욱연 옮김, 문학동네, 2020)다. 이 판본은 2002년 인민출판사에서 특별 간행되었던 것으로 중국 현대 판화의 거장 자오옌넨이 새긴 목각 판화가 삽화로 실린 것이 특징이다. 『아Q정전』(2011), 『들풀』(2011), 『광인일기』(2014)에 이어 네 권째 나왔으며, 번역은 이번에도 이욱연 교수가 맡았다. 차후에 『옛이야기, 다시 쓰다』로 완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 실린 루쉰의 작품은 「복을 비는 제사」, 「비누」, 「장명등」, 「가오 선생」, 「고독자」, 「애도」, 「이혼」 등 일곱 편이다. 역자에 따르면,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 실린 작품 중에서 고른 ..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_ 실뱅 태송, 『여행의 기쁨』(문경자 옮김, 어크로스, 2016)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소로는 귀뚜라미 노랫소리에서 신의 음성을 들었다. 반 고흐는 전원에서 풍경의 역선(力線)들을 보았다. 네르발은 파리의 길들과 자기 영혼의 미로를 혼동했다. 풀카넬리는 황금비가 천체의 운행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암술을 둘러싼 꽃잎들의 배치도 주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고는 산사나무 향기가 별자리와 무관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견자(見者)’는 눈이 만족하는 곳에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지엽적인 것들을 모두 뒤져서 우주를 추격한다. 이것이 관찰에 적용되는 환유의 원리다. 여행자는 풀잎에서 우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평면구형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정신이 모래알 하나로도 충분히 ..
고요에 대하여(이남호) 고요는 우리를 향기롭고 높은 세계로 데려간다. 세상의 변화는 점점 고요를 바보로 만들지만, 고요는 바보가 아니다.―이남호 올해 열세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이남호의 『일요일의 마음』(생각의나무, 2007)이다. 단정하고 우아한 고독의 문장들로 가득 찬 에세이집이다. 제목 ‘일요일의 마음’은 미당 서정주의 시 「일요일이 오거던」에서 따왔다. “일요일이 오거던/ 친구여/ 인제는 우리 눈 아조 다 깨여서/ 찾다 찾다 놓아 둔/ 우리 아직 못 찾은 마지막 골목들을 찾아가 볼까”로 끝나는 성찰의 시다. “찾다 찾다 놓아 둔” “마지막 골목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나 끝내 챙기지 못했던 아름다운 가치들을 상징한다. 그건 일상의 부단한 번잡함 속에서는 도저히 찾지 못할 것이다. 오직 “일요일”에만, 고요와 정숙..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다 삼류 작가의 시시한 작품보다 거장의 걸작을 오해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린 시절, 루카치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깃발 아래 읽었던 발자크의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없었던가. 그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사상이 왕당파에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 핍진한 묘사 때문에 소설 내용이 ‘부르주아의 승리’라는 역사적 법칙의 엄중함에 따른다는 것만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려 들었다. 작품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관념들의 전개, 귀족 세력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상인 세력의 발흥, 그 갈피에서 오로직 역사 법칙에만 복무하는 듯한 인물의 행위들, 이런 독서는 결국 나의 발자크 읽기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나는 발자크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극도로 ..
젊은이에게 보내는 충고(타르코프스키) 요즘 청년들은 너무 바쁘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문자 등 소셜에 사로잡힌 과도한 소통이 청년들을 오히려 병들게 한다. 고독 속에서 자신을 세우는 것,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함으로써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모험은 이제 젊은이들의 문화 속에서 거의 완연하게 사라져 가는 중이다. 러시아의 영화 감독이자 작가인 타르코프스키는 현대인들의 이런 번잡한 삶에 일침을 가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호소한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내 생각에 사람들이 배워야만 하는 유일한 것은 홀로 있는 것,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시끄럽고, 때때로 공격적이기까지 한 사건들 주변에 모여들려고 애쓰는 것이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함께 있으려는 이러한 욕망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