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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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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침묵의 살인자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질병에 시달린다. 타고난 질병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 삶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젊을 때에는 사고나 중독이나 감염 탓에 병에 걸리고, 나이 들면 주로 노화로 인해 병든다. 그러나 당뇨병, 고혈압, 요통, 불안, 우울 같은 이상한 질병들도 있다. 우리의 구석기 조상들은 이러한 질병들을 몰랐다. 자연 상태에서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바이바 크레건리드는 『의자의 배신』(고현석 옮김, 아르테, 2020)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이 이상한 질병들을 일으킨 범인이 ‘의자’라고 말한다. 인간의 기본형은 직립이다. 인간은 일어서서 두 발로 걸어서 손을 해방시킴으로써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인간 발은 움직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특히 오랫동안 걷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하루 대부분을 ..
걷기에서 희망을 읽다 집 앞, 당현천 산책길에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지루한 방바닥 구르기와 답답한 마스크 생활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나와 물 따라 난 길을 천천히 걷는다. 따스한 봄볕이 마음을 부추기고, 상쾌한 바람이 생기를 가져오며, 살짝 벌어진 꽃들이 기쁨을 일으킨다. 우연히 마주친 이웃과 가볍게 안부를 나누고 반가운 대화를 즐기기도 한다. 우정과 사랑이 곳곳에서 피어난다.프랑스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의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백선희 옮김, 책세상, 2017)에 따르면, “모든 이동이 기계화・동력화된” 현대 사회에서 걷기는 “산으로, 숲으로, 들판으로, 바닷가로” 떠나야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활동”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걷기’는 “인간의 기본적 몸짓, 세상에 존재하는 본래적 방식”이다. “오래 걸을수록 ..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_ 실뱅 태송, 『여행의 기쁨』(문경자 옮김, 어크로스, 2016)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약돌 하나를 보고 산을 상상했다. 소로는 귀뚜라미 노랫소리에서 신의 음성을 들었다. 반 고흐는 전원에서 풍경의 역선(力線)들을 보았다. 네르발은 파리의 길들과 자기 영혼의 미로를 혼동했다. 풀카넬리는 황금비가 천체의 운행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암술을 둘러싼 꽃잎들의 배치도 주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고는 산사나무 향기가 별자리와 무관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견자(見者)’는 눈이 만족하는 곳에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지엽적인 것들을 모두 뒤져서 우주를 추격한다. 이것이 관찰에 적용되는 환유의 원리다. 여행자는 풀잎에서 우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평면구형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정신이 모래알 하나로도 충분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