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職)/책 세상 소식

조선 시대에도 서평이 있었을까?

서평(書評)이란 책을 읽고 그 내용과 체제 등을 평하는 것이다. 이때 평(評)은 말[言]로써 고르는[平] 일로, 부족한 것은 질책하고 넘치는 것은 깎아서 바로잡는 일이다. 한마디로, 서평은 비판적 책 읽기를 전제로 한다.

서평과 독후감은 다르다. 독후감이 단순히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소개하거나 감상을 늘어놓는 글이라면, 서평은 “책에 대해 타인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설득하기 위한 글”(서울대 글쓰기 교실)이다. 

서평은 공동체가 함께 알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논쟁해 볼 만한 주제나 내용을 담은 책을 고르고, 그 책에 대한 이해와 비평을 조리 있게 전해야 한다. 따라서 서평이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향한다면, 독후감은 주관성과 개인성에 머무른다. 

우리나라에서 신문의 신간 안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현대적 의미의 서평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아직 학문적으로 연구된 바가 거의 없다. 

근대 이전엔 본격적 서평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어 보인다. 고려 말 문인 이규보의 「논시설(論詩說)은 한국 최초의 시론이다. 이 글은 여러 시인의 작품들을 품평하면서 시에 대한 그의 독특한 생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글을 서평이라고 할 수는 없다. 책에 대한 글이기보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예비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서평을 문예비평의 한 갈래로 보는 견해도 있긴 하다.)

조선시대에 특정한 책에 관한 언급과 품평은 주로 서문이나 발문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서문이나 발문은 책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 객관적 견해를 보여주는 서평과는 그 형식이 다르다. 이들은 저자의 됨됨이를 보여주고, 책의 장점만을 부각해 읽을 만한 책임을 소개하는 추천사에 더 가깝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책을 읽고 그 느낌을 적은 글은 무척 다양하다. 관련한 글들은 대부분 경론(經論)이나 주소(註疏) 또는 독후설(讀後說)의 형태를 취한다. 이들 역시 책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서평이라 하기는 힘들다. 경론이나 주소는 대부분 어떤 책에 담긴 구절들을 중심으로 관련 학설이나 이론을 소개하고, 거기에 자기 견해나 이론을 간단히 덧붙여 전개하는 논술에 더 가깝다.

독후설은 “서책을 읽고 난 후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설명을 더 붙이거나, 자기 소감을 피력하면서 의견을 가하는 설을 말하는데, 현대의 독후감과 비슷한 성격”(양현승)의 글이다. 흔히 ‘독(讀)+서책 이름+설(說)’ 또는 ‘석(釋)+서책 이름+설(說)’ 형식의 제목을 달아, “해당 서책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해석하면서 설명을 덧붙이고, 자기의 견해를 써” 나가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양현승은 서평의 역사와 관련해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글로 김종후(金鐘厚, 1721~1780)의 「경련설(敬蓮說)」을 든다. 이 글은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을 읽고, “거기에 나타난 필자의 견해에 대해 논리적으로 비판 또는 동조”하면서 자기주장을 전하고 있어서 “감상의 차원을 넘어선 현대의 비평문에 가깝”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자신이 애련(愛蓮)이 아니라 경련(敬蓮)이란 글을 지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어서 역시 서평으로 분류하기엔 적합지 않아 보인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전하고 감상을 적은 다른 형태의 기록도 있다. 여러 문집에서 보이는 독후기(讀後記) 또는 독후시(讀後詩)이다. 가령, 허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제자 전서를 읽고, 노자, 열자, 장자, 관자, 안자(晏子), 상자(商子), 한비자, 묵자, 순자, 양자(揚子), 자화자(子華子), 손자, 오자, 여자(呂子), 회남자, 문중자(文仲子) 등에 대한 독후기를, 『을병조천록(乙丙朝天錄)』엔 북경에 사신으로 갔다 오는 와중에 여러 책을 읽고, 그 감상을 독후시로 남겼다. 

이지의 『분서(焚書)』에 대한 독후시는 한때 그 사상에 빠져든 걸 후회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시라는 형식의 특성상, 그 내용이 책에 대한 객관적 접근보다는 감회에 치우쳐서 현대적 의미의 서평과는 거리가 멀다. 제자 전서에 대한 독후기 역시 읽고 난 소견을 간략히 적은 것으로 책 내용에 대한 안내는 거의 없어서 서평이라 하기엔 부족하다. 

여러 가지 서책에 대한 독후감을 형식 없이 마음 편하게 써 내려간 수필 형태의 글도 있다. 독후설의 한 갈래인 이들은 독서쇄설(讀書瑣說), 독서천설(讀書淺說), 간서잡설(看書雜說) 등의 제목으로 나타난다. 가령, 권근이 『서경』을 읽고 쓴 『서천견록(書淺見錄)』 같은 책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듯하다. 

이 글들은 대부분 경전이나 역사서를 읽고 소감을 남긴 글로, 책 내용을 초록하고 거기에 간단한 의견과 감상을 덧붙이는 독서 기록에 더 가깝다. 역시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서평이라고 보기엔 약간 아쉽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엔 장유(張維), 이상수(李象秀), 홍대용(洪大容), 정범조(丁範祖) 등이 이런 제목으로 “전기소설(傳奇小說)이나 인물전기, 역사서 등의 서적을 소개한 글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 글들은 “단순히 작품 내용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저자에 대한 정보나 작품의 창작 배경, 비평 등을 서술”했다. 더 전문적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서평의 기원을 찾는다면, 아마도 이 글들을 시작으로 놓아야 할 듯하다.

====

이렇답니다.

《기획회의》626호  청탁을 받아서 

관련 논문 몇 편을 읽고 간략히 정리한 글이다. 

잡지에 실린 부분은 아니다.

관련해서 본격적 연구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형록(1808~?)의 책가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