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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출생률 저하와 한국 출판

선진국에서 출생률 저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성의 사회적 독립성이 중요해질수록 출생률은 떨어진다. 교육받고 똑똑한 여성이 취업을 통해 경제적 독립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아이의 출산과 양육보다 자기실현을 더욱더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출생률 저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선진국의 공통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회 발전 속도로 인해 이에 미처 적응할 여유가 없었다. 그 결과가 기록적 저출산(2023년 0.68명 예상)이다.

​출생률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선진국은 세 나라밖에 없다. 스웨덴(제도적으로 양성평등 강제), 프랑스(정상 가족 해체), 미국(이민)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같은 보수 정당들은 대개 미국식 해결책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선별 이민이다. 고학력 고부가가치 능력자들의 국적 취득은 장려하고, 육체노동 이주민은 단기 고용 후 내쫓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간 대량 이민에 따른 여러 사회 문제를 늦출 수 있으나, 충분히 효과적인지는 의심스럽다. 불법 체류자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그전에 인구 감소로 대한민국 전체가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이민과 함께 스웨덴식 방식이나 프랑스식 방식을 적극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출생률 저하와 한국 출판

출생률 저하는 학령인구 감소, 고령 인구 증가 등으로 전형적 내수산업인 출판에 큰 영향을 끼친다. 얼마 전 교육부 발표 자료대로, 2024년 초등학교 학령인구는 처음으로 30만 명대로 떨어지고, 유치원 학령인구는 20만 명대로 줄어든다. 20년 후에는 대학 입학생이 약 2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기에 현재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

인구가 줄면, 잠재 독자도, 실질 독자도 줄어든다. 게다가 우리 사회엔 디지털 충격에 따른 독서율 저하(2021년 국민 독서율 47.5%)도 급격히 진행 중이고, 독서를 지식 정보 획득의 필수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인식 변화도 현저하다. 성인 독서량 감소는 아동 독서량 감소로 자연스레 이어지고, 이는 한국 출판시장의 장기적 악순환의 출발점이 될 가망성이 높다.

따라서 출판산업은 신규 콘텐츠 발굴, 새로운 내수 시장 개척(디지털 출판, 구독 모델 등),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토이북 등), 해외 시장 개척(저작권 수출 등) 등에 나서지 않으면, 시장 규모 축소에 따른 산업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다. 우리보다 먼저 인구 감소가 시작된 일본 출판시장 흐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출판은 북 비즈니스(book business)에서 북 센트릭 비즈니스(book-centric business)로 필연적으로 전환된다. 전자책, 오디오북, 웹소설, 웹툰, IP(지적 재산권) 판매, 콘텐츠 정기구독, 독서 모임, 강연회 등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 모델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출판산업은 대부분 소기업 중심(교육 출판 기업을 제외하면 가장 큰 단행본 회사도 연 매출 500억 정도로, 이는 다른 산업에서 중기업 수준에도 못 미친다)으로 자체 혁신 역량이 거의 축적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정부의 출판 지원 사업은 종이책 시장 보존(독서 운동, 도서관 확충, 축제, 불법 복제 단속 등 시장 충격 최소화)만큼이나 신규 시장 개척에 집중해야 마땅하다.

교육 출판 시장의 변화

한국 출판산업 규모의 약 60%를 차지하는 교육 출판은 해마다 잠재 시장이 축소되면서 경쟁이 심화 중이다. 뜨거운 교육열, 즉 증가하는 사교육비 규모(2022년 약 26조 원)가 시장 축소의 충격을 완화하고 있으나, 현재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2022년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교육 출판사 매출은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감소했다. 고물가(종잇값, 인쇄비, 인건비 등)와 마케팅비 증가가 그 원인이다.

갈수록 규모가 줄어드는 교육 출판시장의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정부 정책이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정책은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 중인 인공지능 교과서이다. 각 교육청은 학생 숫자는 감소로 인해 남는 예산을 이용해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 보급에 열을 내고 있다. 부산과 경남 지역은 100% 스마트 기기 보급을 완료했고, 서울시 교육청도 기기 보급 사업에 뛰어들었다.(최저가 입찰로 중국산 기기를 대량 보급하는 바람에 우리 국민 예산으로 중국 업체 경쟁력을 키워 주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있다. 한심한 짓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기기 보급과 나란히 2025년부터 서서히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고, 3년간 종이 교과서와 병행하다가 2028년에는 전 과목을 디지털 교과서로 가르치게 된다. 종이 교과서의 종말이다. 아이들이 태블릿PC 하나만 들고 학교 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설마 디지털 교과서 프로그램도 중국산을 쓰진 않겠지???)

어쨌든 종이 중심 학습 시대는 끝났다. 태블릿PC 활용 수업, 개인 맞춤형 학습 콘텐츠 제공 등 에듀테크와 결합하지 않은 교육 출판시장은 서서히 약해질 테다. 아이들이 사이버-피지컬 수업에 익숙해지면, 종이 학습지 시대도 함께 황혼기에 접어든다. ‘가벼운 학습지’가 보여주듯, 성인 대상 학습지 시장이 일부 이를 대체하겠으나, 홈스쿨링 등 사교육 시장에서 종이 학습지의 장기적 시장 약화는 필연적이다. 물론, 이들 업체는 투자 여력이 있으므로, 에듀테크 기업에 투자, 합병, 제휴 등을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성인 그림책 시장이 대안?

그림책, 이야기책, 청소년책 시장은 어떻게 될까? 일본의 경우, 종이책 시장 활성화(북스타트, 아침 독서 운동, SNS 마케팅 등)와 함께 콘텐츠 저작권 수출, 해외 현지 법인 설립 등 IP 국제화를 통해 시장 축소에 대응 중이다. 백원근에 따르면, 그 성과의 핵심은 꾸준한 투자다. 해외 진출에 성공한 일본 출판사들은 20년 이상 관련 전문가를 배치하고 그들이 지속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왔다. 현지 출판사, 에이전시, 판매회사, 번역자 등과 강한 네트워크 구축 없이 글로벌 출판에 성공할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의 경우, 이수지, 백희나 등의 연이은 수상 소식이 보여주듯 그림책의 콘텐츠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나 대부분이 개별 작가들의 성과에 가까울 뿐이다. 최현정에 따르면, 출판사가 시장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시장을 주도하는 분위기로, 출판사는 예전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해외 시장에 체계적으로 접근하려는 장기 출판 전략은 미약한 편이다.

IP를 활용한 콘텐츠 비즈니스 전략도 아직 수동적이다. 학습 만화를 제외하면 처음부터 IP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 IP 비즈니스의 근간이 되는 캐릭터 물, 시리즈물에 대한 출판사의 공격적 투자가 미약한 편이다.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까닭이다. 비평, 추천 도서 등 사회적 평가 역시 지나치게 단행본 중심으로 짜여 있는 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림책 운동가들 사이에서 시니어 그림책 시장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그림책을 찾아 읽는 성인 독자들의 유입은 꾸준한 편이다. 그림책 전문 독립서점의 확산, 그림책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의 성장도 꾸준히 확인된다. 작가, 편집자, 비평가 등을 제외하면, 성인 그림책 독자의 다수는 그림책 심리, 그림책 감정 테라피, 그림책 감정 코칭 등을 상담 관련 공부를 한 지도사들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림책을 그 자체로 즐기기보다 교육이나 상담 수단으로 활용하는 도구적 읽기가 흔한 셈이다.

그런데 그림책 읽는 어른이 존재할 수는 있으나, 이 영역이 지속 가능한 시장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 시니어 그림책 시장은 독립적이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그림책 운동가들이 흔히 이야기하듯, 그림책이 독립 장르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서점이나 도서관 등에 어른을 위한 그림책 전시대를 설치해 운영하는 일본과 달리 그림책이 독서 현장과 충분히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장 성장이 더딘 근본 이유는 시니어 그림책이란 개념의 한계 탓일 수 있다. 성인의 독서는 상당 부분 습관에 의존한다. 시니어 독자들 다수의 독서 경험은 풍부한 정보, 정교한 논리, 다양한 인물 등으로 짜인 긴 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독서환경과 평생의 습관을 저버리고 그림책을 꾸준한 독서 재료로 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간략한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그림책에서 성인을 위한 깊은 통찰을 끄집어내는 일은 고급 독서에 속한다. 짧고 간단하고 암시적일수록 독자는 읽기에 더 많은 공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체계적 전략 없이 성인 그림책 시장에 무작정 투자하는 건 위험해 보인다. 시니어 시장을 겨냥한다면, 차라리 그래픽 노블에 투자하는 편이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시니어 출판은 아직......

저출생과 고령화는 잠정적 동의어다. 아동 및 청소년 독자의 감소와 시니어 독자의 증가는 한국 출판에서 필연적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다.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0%를 넘어서고, 학력 높고 인구 많은 50대와 40대가 출판시장의 잠재적 주류가 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출판시장에서 50대 이상 독자 비율은 극히 낮은 편이다. 최근 여러 언론에서 주목했듯, 40대 독자가 이미 출판시장의 주류로 올라선 데 비하면 50대 독자의 약화는 기이하다.(40대에 책을 열심히 구매하던 독자는 50대가 되면 갑자기 독서에서 멀어진다. 그 이유는 아직 모른다. 이를 정확히 확인하려면 50대 비독자에 대한 장기 추적 조사가 필요한데, 관련 연구는 아직 없는 듯하다.) 한국에서 독자는 늙어가지 않고 나이 들면 사라진다.

마흔을 말하는 책들의 판매량은 많으나, 50대나 60대를 말하는 책들의 판매량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주로 ‘할머니’를 키워드로 하는 노년 에세이의 주 독자층도 40대이다. 50대 이후를 대상으로 한 출판에서 비교적 반응이 있는 건 ‘건강’이다. 여기에 더해 50대 이후에 자기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내는 회고록 시장은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성장 가능성이 있는 듯하다.

‘큰글자도서’는 개인 구매는 미약한 편이고, 아직 정책 의존적이다. ‘생애주기별 독서자료’ 보유 여부가 도서관 평가에 포함되면서 생산이 크게 늘었다. 시니어 독자들의 전자책, 오디오북 등 디지털 콘텐츠 선호는 실제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낮지 않다. 약해진 시력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튜브, 팟캐스트 등에 그 수요의 대부분을 빼앗겼다. 시니어 출판을 이야기하려면 종이책 콘텐츠를 활용해서 관련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작에서 수익을 내기 위한 공격적 접근이어야 한다.

어쨌든, 시니어 출판은 아직 잠재적 가능성일 뿐 뚜렷한 현실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변화하는 인구 구조를 고려할 때, 50대 이상 독자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 개발은 필수적이다. 이 나잇대 독자들을 미래의 독서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는 한국 출판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