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타자를 표절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관계가 성립한다.
글을 쓰다 타인의 글을 인용하는 건 상업적 목적으로 그의 글을 가져와서 팔아먹는 것과 질적으로(그리고 법적으로도) 다르다. 그건 그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자 오마주이고, 이제 그가 내 기억, 내 정신, 내 마음의 완연한 일부가 되었다는 표시다.
내가 겪어 기억하는 타인의 인생이 그의 인생이면서 내 인생이듯, 내가 읽어 기억해서 즐겨 입에 담는 타인의 문장은 그의 문장이면서 내 문장이다.
내 문장을 내가 쓰는데, 무슨 저작권이 필요할까. 표절을 피하기 위해 출처를 밝히는 것으로 대부분 충분하다. 연결된 마음, 겹친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내 것에 집착하는 건 완악한 탐욕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려나 자연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유지할 것이다. '인간들이 도울 수 없는 곳에서 신들이 우리를 돕게 하소서'라고 노래하던 방식으로."
부희령 에세이 <가장 사적인 평범>(교유서가, 2024)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중간의 인용 구문은 <오래된 미래>에서 온 것이다. 이 문장은 부희령의 문장 속에서 본디 맥락과 전혀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부희령 자신의 것이다. 다르게 고쳐 쓸 수도 없다. 압축된 저 한 문장에 스며 있는 그리움, 갈망, 바람 등의 효과가 달라질 가망성이 높기 때문이다.
새삼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얼마 전 인용을 둘러싸고 모 단체에서 사례 연구를 하겠다는 말을 들어서다. 이미 대법원 판례도 있고, 해외 사례도 누적되어 있다.
아무리 적당한 사례를 만들어도 거의 소용 없다. 흔히 상상하듯 길이나 양, 인용 형식 등을 표준화하면 해결되리라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진짜로 법적 문제가 된다면, 그때는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법적 이슈도 크지 않은 인용에 대한 저작권 논란을 일으킨 건 소수 대형 출판사의 이해 때문이다. 내줄 건 적고, 얻을 건 많으니까. 인용이 자주 되는 고전/문학/인문학/베스트셀러 책들을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득실은 명확하다.
쓸데없는데 세금을 쓰지 말고, 혹시 헷갈린다면, 박경신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쓴 <사진으로 보는 저작권, 초상권, 상표권 기타 등등>(고려대학교출판부, 2009)를 읽어보길 바란다. 제목은 다소 성의 없어 보이지만, 저작권 관련 여러 이슈에 대한 법학적 성찰이 담겨 있는 드문 책이다.
메타적 성찰이 없고, 개별 사례의 위반 여부만 생각하면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인용에 대한 원칙은 크게 보면 하나뿐이다. "필요한 만큼만, 인용 부분만 따로 감상할 수 없도록" 인용하면 된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시 한 편 전체를 인용하거나, 별면을 주거나 별색으로 표시하는 등의 생각 없는 짓만 안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인용 저작권에 대해서 묻는 출판사 여러분은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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