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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문득문득 편집이야기

편집자의 일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아마도 이상적인 출판사의 미래 모습은 저자가 제공하는 원자재인 원고를 다듬는 1차 산업, 책에 담긴 콘텐츠를 온라인 제품으로 재가공하는 2차 산업, 이를 다시 파생상품(만화, 게임, 영상자료)으로 연출하는 3차 산업이 한 지붕 아래 종합상사처럼 집합한 형태일 수도 있다. 

출판사 편집자는 더 이상 잘 팔리는 필자 섭외와 오탈자 교정으로 전문성을 낭비하는 대신에, ‘열린 책’인 하이퍼텍스트의 건축가 또는 디자이너로 자신의 직업의 본질을 바꾸어야 한다. 

마셜 맥루한이 창안한 고전적인 개념을 빌리자면, 책(문자)이 대변하는 ‘차가운 매체’와 영화(영상)가 상징하는 ‘뜨거운 매체’의 경계는 사라지고 ‘보이는 라디오’와 ‘읽어주는 오디오북’처럼 하이브리드 뉴 미디어가 지배하는 신세계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육영수, 「DT 시대의 독자란 누구인가」, 《기획회의》 554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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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DT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mation)이다. 이 말은 상당히 과장되어 쓰이고 있긴 하나, 정보 세계와 현실 세계가 뒤섞이는 이 시대 변화를 묘사하는 데 괜찮은 용어로 보인다. 

육영수 선생님은 내가 모든 저서를 읽은 국내 필자 중 한 분이다. 『책과 독서의 문화사』(책세상, 2010)는 편집자/사서의 필독서이다. 안 읽었다면, 지금이라도. 

이번 호 《기획회의》에 육 선생님 글이 실렸다. 편집자라는 직업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거의 사실 확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에 이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출판의 핵심이 책의 생산이 아니라 지적 재산권 비즈니스로 옮겨가고 있음을 선언했다. 이후, 개별 출판사가 바라든 아니든, 업의 본질은 꾸준히 변화를 맞았다. 이는 바뀌지 않는다. 정보의 물리학이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중심으로 사고하면, 출판의 미래가 컴컴하다. 그러나 책이 아니라 읽기라는 인간의 기본 행위를 바탕으로 어떤 가치를 생산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출판의 미래는 밝다. 

디지털이 본질이 아니라 읽기가 본질이다. 미래에 혹여 디지털 문명이 사라져도, 읽기가 정신의 중심에 놓이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존재가 본래 그렇다.

예민한 편집자라면 이미 이를 느끼고, 읽는 사업에 맞추어 서서히 자신을 진화시켜 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적 재산권 확보는 우리 사업의 미래에 당연히 필수적이다. 그러나 확보한 지적 재산권을 적극적으로 사업화하지 않으면, 저자들은 빠르게 이탈할 것이다. 

2차 저작권을 확보했으면, 수동적으로 판매되길 기다릴 게 아니라 이를 매출과 수익으로 만들기 위해 일해야 한다. 아니면, 저자는 에이전트부터 찾을 것이다. 만화가, 웹소설 작가들뿐만 아니라 이미 주요 소설가들, SF 작가들이 에이전트를 두고 있다. 조만간 에세이, 논픽션 작가들도 그쪽으로 넘어갈 것이다.   

물리적 책을 중심으로 사고하면 곤란하다. 이런 회사들은 빠르게 약해질 가망성이 높다. 우리 비즈니스의 본질은 책이 아니라 읽기이다. 읽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로 확산하는 일을 하는 회사만 서서히 강해질 것이다.  

이번 호 《기획회의》 특집 "독자의 발견"은 육영수 선생님 글만으로도 필독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