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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도덕적 진보의 깃발을 들 때

슬프게도, 뻔뻔함의 시대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정치의 원리가 됐다. 두꺼운 얼굴로 되려 ‘어쩌라고’라고 외치고, 시커먼 마음으로 ‘그래서 뭐?’라고 소리친다. 후안무치에 인면수심이 횡행한다.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무력화하려고 했던 자가 가벼운 경고행위라고 우긴다. 이에 동조해 나라를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리는 데 끼어들려 했던 자가 고개를 뻣뻣이 들자고 선동한다. 아이들 눈을 가리고 귀를 씻어주고 싶다. 이런 때에 어른으로 산다는 게 창피할 뿐이다. 잘못은 더러운 자들이 저질렀는데, 부끄러움은 착한 사람들 몫이 됐다.

2025년 첫 책으로 ‘어두운 시대에도 도덕은 진보한다’(열린책들)를 꺼내 읽었다. 저자인 마르쿠스 가브리엘 독일 본 대학 교수는 우리 시대가 심각한 가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를 지탱하는 세 가지 가치 기준인 “자유, 평등, 연대와 이들의 시장 경제적 실현”은 불가능한 꿈처럼 여겨진다. 권위주의를 그리워하고, 차별을 주장하며, 각자도생을 당연시하는 주장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세계는 “민주주의 법치 국가를 도덕에 기초한 가치 시스템으로 간주하는 입장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오늘날 험악한 막말과 흉측한 선동은 수익률 높은 돈벌이 수단이 됐다. 극단주의자들은 음모론을 내뱉고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만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집회는 민주주의적 정체성을 상실해 일종의 모금 비즈니스에 가까워진 듯 의심된다. 버스를 대절해 사람들을 실어 날라도 넉넉하게 남는 장사로 변한 듯하다. 장사꾼 손에 정치가 넘어가면 입 발린 말과 뒤통수치기, 탐욕과 이기주의가 사회적 전염병이 된다.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는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생존주의를 퍼뜨려서 결국 공동체를 내전 상태로 몰아넣는다.

혼란에 지친 어떤 이들은 권위주의 시절의 향수에 휩싸여서 자유와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려 한다. 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리라 착각한다. 선동꾼들은 그들의 불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독재자를 예찬하고 폭력을 부추긴다. 하지만 총으로, 도끼로, 포승줄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없다. 노예들의 민주주의는 자유 없는 폭군정과 똑같다. 우리를 삶의 주인으로 만드는 민주주의는 우리 각자가 복종하는 백성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으로 살아갈 때만 온전히 작동한다. 따라서 함부로 자유를 제약하고 평등을 훼손하며 연대를 방해하는 어떠한 권력의 술책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겐 통치자의 뻔뻔함을 제압하고 음험한 마음을 무찌를 힘이 있다.

가브리엘에 따르면, 모든 위기엔 충돌과 파탄의 위험과 더불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기회도 담겨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도덕적 통찰을 길잡이로 삼을” 때 생겨난다. “도덕적 이유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마땅한지를 과거보다 더 많이 숙고할 때만 우리는 사회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러면 어떤 말과 행동이 내 편에 더 유리한가부터 따지지 말고 먼저 “우리가 인간으로서 누구이며, 미래에 누구이고자 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는 일찍이 맹자가 양나라 혜왕에게 한 말과 궤를 같이한다. “어찌하여 이익 먼저 챙기십니까? 오직 인(仁)함과 의로움이 있을 뿐입니다.”

사회 전체가 도덕적 붕괴와 가치의 혼돈 상태에 휩싸여 있을 때, 솔깃한 선동에 휘말리지 않고 끈질긴 자기성찰을 이어가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 한 사회가 “근본적으로 경쟁과 분배 투쟁에 의해 조종”되고, “국가의 통제와 감시를 통해서만 그 투쟁을 제어”할 수 있다는 낡은 인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더욱더 어렵다. 

그러나 현대 시민사회의 근본 원리는 자율성이다. “인간 본성은 자유”이기에 국가나 기업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 자신만이 우리를 스스로 조종하고 통치할 수 있다. 현재처럼 갈라지고 분열된 세상에선 이런 신념을 지켜가는 데 과거보다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가브리엘이 “자신의 도덕적 능력을 자각하는 것은 이 시대의 명령”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도덕적 통찰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은 인생에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그에 맞추어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유일한 존재다. 나라는 존재는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르다. 우리는 제각각 다른 지식, 관점, 경험, 느낌을 품고 살아가고, 사회 구조에서 각자 다른 위치를 차지하며, 삶의 방향과 목적을 조금씩 다르게 규정한다. 그러나 이 다름이 우리 모두 함께 지켜야 할 도덕의 존재를 인식하는 걸 방해하진 않는다.

도덕은 “우리의 의도적이며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행위”를 세 가지로 나눈다. 해도 되는 선한 행위, 하지 말아야 할 악한 행위, 할 수 있는 허용 행위이다. 성숙한 시민들은 억압적 사회기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도덕적 통찰을 통해 자율적으로 자기 행동을 조절함으로써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룩한다.

가브리엘은 말한다. “도덕적으로 성공적인 인간 사회의 목표는, 우리들이 민족, 문화, 집단으로 분열해 마치 몸과 몸속 이물질이 맞서듯 서로 맞서는 결과를 자아내지 않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환상들을 산출하는 것이다.” 혐오가 일상화하고 불신이 넘쳐나는 어두운 시대엔 이런 공동 환상을 쟁취하기 힘겹다. 이번 계엄 선포처럼, 해도 되는 행위와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착각하는 어리석음이 넘쳐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모든 인간이 함께 따르고 지켜야 할 비가역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그러니까 우리에겐 무엇을 해야 마땅한지,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무슨 일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도덕적인 나침반이 존재한다. 성숙한 이들을 이를 인식해서 올바르게 행동하고, 형편없는 이들은 잘못된 환상에 미혹되어 나쁜 길로 접어들 뿐이다.

새해를 맞이했지만, 우리 사회의 상황은 어둡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올바름을 판단하는 걸 불가능하게 하진 않는다. 도덕적 진보란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더 명확히 인식하는 일이다. 뻔뻔함이 기승을 부리는 위험과 위기의 세상일수록 이를 통해서만 어둠에 맞설 수 있다. 올바른 자가 승리한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줄 때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어두운 시대에도 도덕은 진보한다』, 전대호 옮김(열린책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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