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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인간의 품격

요즘 들어 새벽에 한 시간 정도 사전 읽는 취미를 붙였다. 단어 하나를 찾아 뜻을 새기고, 이어지는 단어를 찾아 떠돌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상용자해』(박영철 옮김, 도서출판 길, 2022)가 여행의 길잡이다.



시라카와에 따르면, 언어는 그 근본에서 모두 주술적 성격을 띤다. 말[言]은 그릇[口]에 형벌 도구인 여(余, 바늘)를 꽂아서 신에게 맹세하는 일이다. 이때 口는 ‘입’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축문을 담은 그릇’이다. 갑골이나 청동기에는 ‘ㅂ’ 닮은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모든 말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어서, 발화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면 신의 벌이 내리므로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신은 언어에 깃든 뜻을 살펴서 되새길 줄 아는 사람에겐 지혜를 주지만, 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하는 자한테는 재앙으로 갚는다.



공자는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민첩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말의 힘을 거스를까 저어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사유가 소피스트의 말 잘하는 법(수사학)에서 시작했다면, 동양 사상은 공자와 노자의 어눌함에서 출발했다. 공자는 항상 꾸민 말[巧言]이나 헛된 말[佞言]보다 더듬는 말[訥言]을 칭찬했다.



오늘 새벽에 사전을 찾아 읽은 말은 품격(品格)이다.



타자를 향한 경멸과 조롱, 혐오와 증오의 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살피고 싶어서였다.



공당 대표가 비통한 삶을 사는 장애인을 향해 공감 대신 비난을 퍼붓는 세태가 암담했다. 서울 교통공사 직원이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게 ‘장애인 시위대 약점 잡아 소셜미디어에 퍼뜨리기’라는 게 끔찍했다.



야비함이 하늘까지 치솟았고, 잔인함은 땅끝까지 치달았다. 약자의 멸시는 언제나 공인의 가장 큰 적이고, 연민의 결여는 모자란 인격의 선연한 증거이다. 품격 없는 삶은 파멸의 지름길이다.



품(品)은 축문 그릇 셋을 나란히 놓은 모양이다. 고대 중국에서 셋은 ‘많다’의 의미다.



품은 그릇을 늘어놓고 한 번에 많은 것을 비는 일이다. ‘여럿, 물건, 물품 등’의 뜻이 여기서 나왔다.



신 앞에 바친 그릇 각각에는 신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담겨 있다. 물건을 물건답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됨됨이’도 그 안에 포함된다.



격(格)은 각(各)에 목(木)이 붙은 글자다. 각(各)은 축문 그릇을 바치고 기도하는 데 응해서 신이 그 위로 내리는 모양이다. ‘이르다’란 뜻이다.



격을 얻은 사람은 언제나 신의 뜻을 물어 행하기에 이 말엔 ‘바로잡다’란 의미도 있다. 격언(格言)은 신의 뜻에 부합하는지 살피도록 하는 좋은 말을 뜻한다.



또한 신의 뜻을 행할 땐 저항하는 흐름도 생기게 마련이므로, 격에는 ‘얽히다’, ‘다투다’의 뜻도 있다. 격투(格鬪)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품격이란 기도에 응하려고 내려온 신을 내면에 품어 됨됨이를 얻는 일, 즉 거룩함을 갖추는 일이다. 화이트헤드를 좇아서 말하면, “정신의 궁극적 도덕성”이다.



인격은 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나날이 노력하고 자신과 싸워서 얻어야 하는 덕목이다.



동물적, 이기적 인간[己]이 뜻을 정성스레 하고 자신을 다듬는 과정[修己]을 통해 저열한 욕망을 이기고[克己] 함께 사는 법[禮]을 아는 인간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인간답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품격은 늘 하늘의 뜻을 물어 자신을 바로잡고, 그 뜻에 거스르는 바를 무찌르는 사람한테만 존재한다. 자기 욕망의 천박성을 이겨내야 비로소 사람의 격(格)을 얻는다.



인격이 하늘에 닿은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한다. 성인은 인간이 이루어야 할 궁극의 인간형이자 이상적 인격이다. 성(聖)은 축문을 읊으면서[口] 발꿈치를 높이 들고[壬] 신의 목소리를 듣는[耳] 일이다.



성인은 사람다움[仁]을 완전히 체득해서 무엇을 하든지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이루려 할 때 남을 이루게 한다.” 자신이 서려고 남을 주저앉히는 일에는 인간이 없다. 사전을 뒤적이며 묻는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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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중앙선데이> 칼럼입니다.

조금 수정했습니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상용자해』, 박영철 옮김(도서출판 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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