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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읽기에 대하여

본래 산만했던 인간의 뇌, 책 안 읽으면 원시인처럼 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뇌는 퇴화한다

인간의 뇌는 물렁물렁해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데

책 안 읽으면 집중 못 하고

원시인처럼 뇌 산만해져


현대인, 디지털 정보에 중독돼

상시적인 주의력 결핍에 빠져

인간의 사유·행동,독서에 최적화

독서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읽기의 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비유는 카프카의 이 편지글에 들어 있다. 어떤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카프카는 생각했다. 판에 박힌 생각을 깨우고 틀에 박힌 영혼을 휘젓는 일종의 비상약처럼 여겼다. 

인간은 책을 읽고 책은 인간을 고쳐 쓴다. 읽는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 행위이면서, 우리 자신을 특정한 형태로 길들이는 일이다. 읽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우리 문명에 참여해 왔다.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 발명이다.” 

미국 신경심리학자 매리언 울프의 『책 읽는 뇌』(살림)에 나오는 말이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약 20만 년 전인데, 문자가 발명된 것은 고작 8000년 전이다. 인류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간은 문자 없이 살아왔다. 우리 유전자에는 독서능력이 새겨져 있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온갖 자원을 투자해 갓난아기를 ‘읽는 아이’로 훈육하고 있다. 문화 유전자(meme)의 명령에 따르면, ‘읽는 능력’은 우리 문명에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독서의 ‘전면후퇴’가 일어나고 있다. 독서율은 해마다 떨어지면서 서점은 무너지고 도서관은 비어가며 출판은 망해 간다. 한 문명의 퇴락이고 역사의 퇴보이며 인간의 퇴화이기도 하다. 읽기를 중심으로 조직된 세계 전체, 즉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수축되는 중이다. 그 자리를 메워 가는 것은 유튜브로 대표되는 영상이고, 리니지로 표상되는 가상이며, 페이스북으로 상징되는 잡담이다. ‘읽기의 힘’을 잃어버려도 인간은 정말 괜찮은 것일까. 혹여 인간 실존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화면으로는 얻을 수 없고, 독서로만 얻을 수 있는 어떤 힘이 있지 않을까.



한국 40대 이상 책 안 읽어


한국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일수록 ‘독서 불안증’에 걸리기 쉽다. 화면에 중독되어 글이 세 줄만 넘어가도 머리가 어질어질, 손이 움찔움찔 하는 현상 말이다. 작년 9월, 이순영 고려대 교수가 한국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독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대상인 전국 10세 이상 남녀 1,200명 중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독자가 23.0%, 책을 실제로 읽는다고 할 수 없는 한 해 한 번 읽는 독자가 15.4%로, 합치면 38.4%였다. 이나마 성인 10명 중 4명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했던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비하면, 비율이 다소 높아진 편이다.

특히, 중년 이후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두 경우 합친 비율이 40대의 43.9%, 50대의 53.0%, 60대 이상의 경우에는 74.4%에 이른 것이다. 아이들 보기에 민망하게도, 40대 이상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 해당한다. 항변할 수는 있다. 초연결사회에서 책을 읽지 않아도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톡 대화방 등에서 정보를 습득할 수 있고, 방송이나 영화 또는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도 좋으니 상관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검색으로는 얻지 못하고 책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책을 읽는 인간과 화면을 보는 인간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화면 보기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인지 능력을 떨어뜨린다. 1989년에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하이퍼텍스트로 이루어진 문서들은 인간을 산만하게 만든다. 글을 주의 깊게 읽으면서 의미에 집중하는 몰입을 방해하고, 제트자(Z)로 훑어 읽으면서 딸려 있는 링크를 클릭해 새로운 문서를 내려 받도록 만든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용자가 문서 하나만 줄곧 읽고 있으면, 돈은 누가 낸단 말인가. 문서 사이를 한없이 이동하면서 새로운 광고에 자주 노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창 유행 중인 SNS의 경우에는 유동성이 더욱 심하다. 정보와 광고가 뒤섞여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정보처리 과정을 즐기다보면, 뇌의 신경망이 변화하면서 독서를 통해 이룩한 문해력이 자신도 모르게 파괴된다.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가 작년에 나왔다.


책 읽지 않으면 뇌 퇴화해


매리언 울프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에 책 읽는 뇌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기술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울프는 젊은 시절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고 수많은 영감을 얻었던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어려운 단어, 배배꼬인 문장, 느려터진 사건 전개를 견디지 못했다. 작품을 읽는 동안 울프는 책장을 끊임없이 앞뒤로 뒤적였고, 당혹감 속에서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녀는 읽으면서 한 번도 집중하지 못했다.

울프의 뇌는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야기의 심층을 살피는 데 필요한 ‘인지적 참을성’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을 모아 문장에 집중하는 대신 표층에 머물면서 핵심만 추리려 들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최고의 독서과학자인 울프조차도 책을 읽을수록 책이 점차 어색해지는 ‘독서 소외’에 빠져든 것이다. 디지털 정보 소비에 중독된 탓이다. 상시적 주의력 결핍 상태에 놓이는 것은 현대인의 무섭고 중대한 질병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는 독서가 힘을 잃자, 우리의 자연적 본성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뇌는 본래 산만하다. 인류는 천적들로 가득한 사바나 지역에서 진화했다. 주변을 끝없이 둘러보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어림짐작으로 판단해 행동하는 쪽이 생존에 더 유리했다. 산만함은 우리의 자연적 본성이다. 

갓난아기들은 눈동자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천장에 매달린 모빌의 운동을 얼마나 즐거워하는가. 이쪽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두는 듯하더니, 어느새 저쪽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에 고개가 돌아가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이들의 관심을 오래 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가르쳐 보면 안다. 인간은 보통은 산만하고, 집중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집중한다. 그 반대가 절대로 아니다. 한 현상에 오래 집중하면서, 그 현상의 원리와 의미를 생각하는 일은 인간의 타고난 자질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문명화 과정의 결과일 뿐이다.

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가소성이다. 뇌는 물렁물렁하다.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뇌를 학습을 통해 변형하고 진화시킬 수 있다. 새로운 체험이나 자극은 뇌 내 뉴런의 새로운 연결망을 증가시키는 반면, 자주 쓰지 않는 연결망을 퇴화시킨다. 일단 형성된 뉴런의 연결망이 좀처럼 사라지진 않지만, 이 과정을 반복해서 거치면 뇌는 이전과 다른 모습이 된다. 얼마나 다행인가. 독서를 통해 우리는 뇌를 ‘집중’에 적합하도록 바꿀 수 있다. 또한 얼마나 불행한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뇌는 다시 산만해진다. 오늘날 유행하는 화면 읽기는 이를 가속화한다.


독서에서만 인간은 깊어질 수 있어


독서의 일차 목적은 정보의 획득이지만, 독서의 효과는 앎 자체에만 있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은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자기 내면에 오로지 집중하는 ‘지적 몰입 상태’에 돌입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청림출판)에서 니콜라스 카는 말한다. “독서가 열어준 조용한 공간에서 인간은 연관성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유추와 논리를 끌어내며, 고유한 생각을 키운다.”

어찌 보면 단어와 문장을 읽어서 지식을 얻는 일보다 이 일을 계기로 뇌를 특정 상태로 가져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생물학적 뇌를 인문학적 뇌로 진화시키는 일이야말로 독서의 진짜 효능이다. 인간은 깊이 읽을 때에만 깊이 생각할 수 있다. 검색이나 영상을 통해서는 사고의 심층을 얻을 수 없다. 느리고 집중된 공부를 하는 독서를 통해서만 인간은 깊어질 수 있다. 그런데 ‘집중하는 뇌’를 만들기에 좋은 시기가 정해져 있다. 일종의 골든타임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언어능력을 타고나는 것은 분명하다. 언어유전자를 가진 데다, 갓난아기의 뇌에는 이미 언어를 처리할 수 있는 신경회로가 존재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회로는 태어난 지 몇 년간만 잘 작동하며, 이 시기를 지난 후에는 더 이상 인간은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 야생에서 발견된 늑대소년들은 신체에 별 이상이 없는데도 끝내 언어를 배우지 못했다. 사물에 이름 붙이기를 시작하는 생후 18개월 무렵, 아이들의 언어능력이 폭발한다. 이 시기에 아이가 듣고 기억한 단어들과 문장들은 후에 사고, 독서, 학습으로 이어지는 기초 자원이 된다. 


부모가 책 읽어준 아이, 학습 능력 높아


2008년에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팀은 18~24개월 사이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주면 나중에 학교에서 높은 학습능력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책 속의 낱말들이 평소 쓰는 말들보다 더 풍부하므로 인지력 발달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2015년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무릎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이를 뇌에서 시각화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문장을 듣거나 읽으면서 이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능력이 곧 상상력이고, 이는 문해력 증진의 문턱이다. 주목할 것은 7살 이전에 글자를 배워 스스로 책을 읽은 것은 예상 외로 큰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부모 등 어른과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이 주된 영향을 끼쳤다. 혼자 읽을 때보다 어른이 읽는 것을 들을 때 아이들은 더 많이 상상하는 것이다.

아이가 자란 후에는 동화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을 천천히 읽는 게 좋다. 인간의 뇌는 백색질과 회색질로 나누어진다. 창의력이나 사고력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백색질이다. 카네기 멜론 대학 연구원들이 독서를 많이 한 아이들의 뇌를 관찰한 결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백색질에 신경망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뇌 안의 정보고속도로에 해당하는 백색질이 발달하면 뇌의 각 부분이 쉽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뇌 전체를 사용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특히, 묵독을 통해 좋은 문학작품을 천천히, 깊게 읽을 때 뇌 전체가 활성화되면서 백색질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다. 요즈음 식당이나 대중교통 등에서 아이들한테 핸드폰을 쥐어주고 동영상을 보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의 정신 발달에 상당히 안 좋다. 화면 시청으로는 백색질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사유·행동 독서에 최적화


독서는 인간의 감각 자체를 향상시킨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우리 감각은 더 풍부하고 예리해진다. 언어 능력이 향상되어 어휘력이 늘어나고 표현력이 좋아지는 것만은 아니다. 2006년 스페인의 연구자들은 “커피향이 좋다” 같은 문장을 읽을 때 뇌의 후각피질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곧이어 프랑스의 연구자는 “파블로가 공을 찬다” 같은 문장을 읽을 때 운동피질 영역이, 2012년 미국의 연구진은 “피부가 부드럽다” 같은 문장을 읽을 때 촉각피질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각각 발견했다. 

뇌는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을 구별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인간은 읽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느낌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신이 직접 탐구하지 않은 지식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인류 전체의 경험을 자기 경험으로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이 ‘문명의 엔진’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감각의 직접성을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인류 전체가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학습할 수 있다. 

또한 독서는 인간의 사회성을 증진시킨다. 『스토리텔링 애니멀』(민음사)에서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의 주된 소재가 ‘말썽’이라고 이야기한다. 살다보면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마주치는데, 인간은 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면서 갑작스러운 사건을 처리하는 법을 연습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독서를 통해 온갖 낯선 상황에서 행동하는 방식을 배우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는 훈련을 한다. 미세한 몸짓, 목소리의 결, 단어와 문장의 섬세한 선택, 하나의 단어에 여러 뜻을 내포하는 중층성 등을 분별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쉽게 친구와 적을 판별할 수 있다. 

인간이 뇌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게 된 이후, ‘독서의 과학’은 폭발적 성과를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독서의 힘’을 충분히 알지 못하지만, 이미 밝혀진 목록만으로도 한도 끝도 없을 정도다. 우리 문명의 전개에서 인간과 독서의 관계는 너무나 긴밀하다. 현재까지 우리의 사유와 행동은 모두 독서에 최적화되어 있다. 자신의 실존을 성찰하고 세계의 의미를 탐구하는 집중된 시간 없이 인간은 인간으로 존립할 수 없다.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독서는 분명히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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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에 한 번 정도 《중앙일보》에 한 면씩 문화 관련 글을 기고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긴 글이고 책, 경험, 연구 자료 등를 넘나드는 글이라서 부담이......ㅜㅜ 어쨌든 첫 스타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