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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내가 고른 이 주의 신간(2012년 6월 4일~10일)


1. 디지털 인간학, 소셜 세계를 만나다 


외로워지는 사람들

셰리 터클/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셰리 터클은 아주 오랫동안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나는 그녀의 작업들로부터 지금까지 디지털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곤 했는데, 이 책은 최근에 유행하는 소셜 네트워크와 로봇의 출현이 우리를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사이버 인간학이라고나 할까 고수의 솜씨가 곳곳에서 번득인다. 디지털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인간이 디지털과 함께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알라딘에서 e비즈니스/창업으로 분류된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MD는 뭐 하는 건지??? 아래는 책 앞부분에서 뽑은 문장들이다.


우리는 도구에 의해 형성된다. 이제, 컴퓨터라고 하는, 막 정신이 되려고 하는 한 기계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형성하는 중이었다. (...) 컴퓨터가 일상 생활 속으로 철학을 가져왔던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철학자로 바꿔 놓았다. 단순한 전자 게임 앞에서 아이들은 컴퓨터가 살아 있는 물건인지, 사람과는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특별한 점이 과연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했다.


인간관계를 불안해하고 친밀함에 대해 걱정하는 요즈음, 우리는 관계를 맺어주는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테크놀로지에 눈길을 돌린다. 이런 현상은 문자 메시지의 홍수를 헤처나갈 때도 일어날 수 있으며, 로봇과 상호작용을 이룰 때도 일어날 수 있다. (...) 우리는 전에 없던 염려로 무생물들에게 열중한다. 같은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실망과 위험을 두려워한다. 테크놀로지로부터 더 많은 걸 기대하고 우리끼리는 덜 기대한다.


연결성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서로에게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하는 방법이다. 로봇에 대한 생각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한 방법이다.


테크놀로지는 친밀성의 설계자를 자처한다. 오늘날, 그것은 실제를 도망가게 만드는 대체물들을 제안한다. (...) 우리는 정말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외로움을 타면서도 친밀해지는 건 두려워한다. 디지털 연결망과 사교 로봇은 '친구 맺기를 요구하지 않는 교류'라는 환상을 제공한다. 우리의 네트워크화한 삶에는 서로 묶여 있는 상황에도 서로에게서 숨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대화보다는 문자 메시지가 선호된다. 


우리는 로봇에게 구애를 하고 스마트폰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간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기계와 나누는 새로운 친밀감을 통해 우리 자신 및 관계가 재창조된다. 


간단한 스마트폰이 그 사이보그들의 복잡한 차림새를 대체하게 되면서, 생경해 보였던 것들이 만인의 생활양식이 되다시피 했다. 인터넷에 하루 종일 접속해 있는 생활이 바로 그것인데, 어떤 면에서는 새롭게 자유롭고, 다른 면에서는 새롭게 얽매인 상태다. 우리는 지금 다 사이보그들이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서는 자신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프로필에는 다른 누군가-되고 싶어 하는 공상 속 인물일 때가 많음-가 자리 잡는다. 구분이 모호하다. 가상 장소는 불확실한 약속들과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 사람들은 디지털 라이프를 '희망을 위한 공간'이라 이야기한다. 새로운 무언가가 다가올 것 같은 공간 말이다. (...)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을 때 예의 사이보그들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자신을 더 대단하게 여겼다. 


언제나 접속된 상태로 이제는 언제나 가지고 다니면서, 우리는 인터넷을 살피고 인터넷은 그것을 필요로 하게끔 우리를 가르친다. (...) 그러나 더 풍족한 시대는 더 빈약한 삶을 우리에게 남겨줄 수도 있다. 네트워크화한 상태에서 우리는 함께 있어도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나 낮아져서 지극히 외롭다고 느낄 수 있다. 또한 타인을 접속 대상으로 보게 될 위험이 존재한다. 그것도 우리가 유용하거나 위로를 받거나 재미있다고 느끼는 부분들에 대해서 말이다.


요즈음 연결 상태는 서로의 거리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사용 가능한 의사소통 기술의 거리에 좌우된다.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는 그 기술을 휴대한다. 사실 아무 간섭 없이 스크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의사소통하기가 더 쉽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이 함께 있는 것을 위한 전제 조건처럼 보이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새로운 체제에서 공항이나 카페, 공원처럼 기차역은 더 이상 공동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집합의 장소다. 사람들이 한데 모이기는 하지만 서로 말은 나누지 않는 장소, 각자 모바일 기기에 묶이고 그 기기가 관문 역할을 하는 사람들과 장소들에 묶여 있다.  





2. E.P. 톰슨이 쓴 윌리엄 모리스 평전


윌리엄 모리스

E.P. 톰슨/ 윤호녕 옮김/ 한길사


윌리엄 모리스 1


윌리엄 모리스 2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834년 영국에서 태어난 윌리엄 모리스는 화가이자 사회 사상가이며,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미술 공예 운동을 통해 잘 디자인된 아름다운 작품을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자 애썼던(결과는 그 반대였지만 말이다.) 다층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내게 윌리엄 모리스는 무엇보다도 천재적인 북디자이너로 기억된다. 국내에서도 여러 번 그의 북디자인전이 열렸는데, 그때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탄에 가슴 벅찼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작과비평, 2000)으로 유명한 E.P. 톰슨이 젊었을 때 처음으로 쓴 역사서라고 한다. 윌리엄 모리스는 영국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니까 그런 관심에서 연구를 시작한 것 같아 보인다. 믿을 수 있는 학자가 쓴 것인 만큼 크게 기대하고 있다. 1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반드시 소유하고 싶은 책이다.



3. 빈민 노동자의 삶을 다룬 고전, 드디어 출간!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 최희봉 옮김/ 부키


미국의 빈민 운동가이자 저술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출세작이다. 원제는 Nickel and Dimed으로 야금야금 뜯어먹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데, 나는 오랫동안 이 책이 나오기를 기다려 왔다. 누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는데 부키에서 번역 중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저자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에 걸쳐 최저 임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그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는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이를 기록해 책으로 출판했다. 일종의 체험 저널리즘이라고나 할까? 삶의 곤란을 감내하면서 이런 장기 지속 프로젝트를 수행해 우리에게 충격적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쓴 저자의 노력에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고학력자로서 저임금 노동을 수행하는 분리 의식이 살짝 깔려 있는 데도 어느새 읽는 모든 사람에게 저임금 생활 노동자의 삶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저자의 글솜씨는 나무랄 데 없다. 언젠가 이런 긴박감 넘치면서도 의식이 살아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4. 감성의 천재, 도시의 쓸쓸한 죽음을 포착하다


개들조차도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민음사



존 맥그리거를 읽은 사람들은 이 작가의 문장이 얼마나 끈질기게 영혼을 파고드는지 알고 있다. 그는 평범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애써 감추어 두었던 아슬아슬한 감정선들을 끝내 끄집어 낸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간 뒤, 노숙자들과 약물 중독자들 사이에서 쓸쓸히 죽어 간 사내의 삶을 되짚어 가면서 맥그리거는 그의 추레하고 형편없었던 삶을 우리들(실제로 화자가 정체불명의, 특정되지 않은 '우리'이다.)의 삶으로 조금씩 확장해 나간다.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삶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읽다 보면 머릿속에서, 아니 가슴속에서 어느새 떠오르는 분위기를 통해서 우리로 변신한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런 기분에 사로잡히는 걸 느낄 것이다. 이어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형태로 실험되고, 갑자기 다른 문장으로 이탈해 버리는 낯선 형식은 목소리를 잃어버린 우리, 자기 정체성이 파괴된 우리, 틈을 통해서만 발화하는 우리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실험적이지만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