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함이 새로움을 통해 더 거대해진다. 새로움은 거대함을 힘입어 더 새로워진다. 규모와 혁신이 서로 디딤돌을 이루어 성장의 높이를 지속한다. 꿈결 같은 시절엔 모두가 열정으로 가슴이 타고 상상력이 빵처럼 부푼다. 천재가 천사를 만나면서, 접힘에서 펼침의 세계를 조감하고 현실에서 가능의 기적을 이룩한다. 이것이 지금의 베이징이다.
세상이 근심 없이 배를 두드리는데, 출판이 어찌 땅을 때려 크게 화답하지 않으랴. 지난 수요일에 열려 일요일에 폐막한 제30회 베이징 국제도서전은 자신감으로 한껏 고양된 중국 출판의 현 단계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종합관, 아동관, 해외관 등 여섯 곳으로 나누어진 전시장 총 면적은 7만 8600m2로 작년보다도 20%가량 확장되었다. 해마다 넓이가 증가하는 중이다. 출판사도 2400여 곳이 참여해 약 4.5%가 늘고, 전시 도서도 무려 30만 종에 달하는 등 명실상부하게 아시아 최대의 도서전으로 자리 잡았다.
베이징에 온 것은 다섯 해 만이다. 그래서 변화가 더 크게 다가왔을 수 있다. 콘텐츠는 ‘인민 스타일’을 시나브로 넘어서고, 만듦새는 비약을 거듭해 세련을 완전히 얻었다. 대국이 일어서는 데[屈起]에서 다만 그치지 않고, 세상을 한 줄로 연결하면서[一帶一路] 밖으로 나가자[走出去]고 호령하는 까닭이 있었다. 전 세계 출판산업의 불황을 아랑곳하지 않는, 중국출판의 수직 상승은 경이로울 정도다. 2015년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친 중국의 서적 판매액은 약 10조 4585억 원에 달한다. 전년보다 12.8% 성장한 수치다. 도서관 및 기관의 도서 구입비 약 2조 6226억 원은 별도다. 출판계 관행에 따라 두 가지를 합치면, 약 13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매년 10~15% 정도 성장한 결과다. 미국보다는 아직 작지만 독일을 이미 추월해서 세계 제2위에 올라섰다.
중국 출판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동인 중 하나는 해외와의 긴밀한 합작이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서서히 가속이 붙어온 중국의 해외서적 번역출판에 일대 전환이 생겨난 것은 2011년이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중국 시장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두면서 해외 소설작품의 번역이 극도로 활성화되었고, 작년엔 『연을 쫓는 아이』가 그 열풍을 이어갔다. 한국문학이 중국에 진출하려 할 때, 민중들의 소박한 삶에 대한 강렬하면서도 신선한 서사적 탐구가 깊이와 기품을 동시에 갖춘 이 소설들은 무척 중요한 참조를 이룬다.
한국출판의 기여도, 특히 아동출판 분야에서는, 무척이나 컸다. 중국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오랫동안 싹쓸이했던 ‘살아남기’ 시리즈를 비롯한 각종 학습만화, 한국출판의 중요 특장이었던 각종 아동전집류의 판권이 수출되어 수백만 부씩 중국에서 팔려나갔다. 그 결과, 한국은 해외 판권 수출입에서 중국의 최대 파트너가 되었다. 작년에 중국 정부가 ‘한 자녀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기하면서 아동 출산 붐이 일어나는 중인 데다, 이들 신세대 부부들이 경제성장에 따른 여유자금을 자녀교육에도 기꺼이 쏟고 있고, 도서전에 ‘아동관’을 따로 마련할 만큼 관심도 크므로 한국출판계로서는 투자를 집중할 지극히 당연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중 출판 교류의 미래와 관련해 이번 도서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중국 출판사들이 저작권 거래 형태가 아니라 세계화 2.0 시대에 걸맞게 상호투자, 공동개발, 기업 간 제휴, 인수합병 등을 포괄하는 합작이라는 개념을 제언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에 수출할 규모 있는 콘텐츠가 서서히 고갈되는 중인 한국출판에 흥미로운 시사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한 한중 출판인 사이의 실질적 교류와 투자가 시험적으로라도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 이번 도서전에서 ‘읽기체험관’을 신설하여 운영했다는 점이다. 이 체험관에는 종이책과 전자책을 넘어선 체험을 제공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책(증강현실 책, 가상현실 책, 오디오북, 토이북 등)이 독자들한테 공개되었다. (종이)책과 디지털 기술이 만난 융복합 서적은 정체에 빠진 출판의 활로를 열어주므로 한국출판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깊은 관심을 요한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이라는 말로써 현대사회를 정의했다. 이 말은 파괴적 혁신이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미래가 항상 충격으로 다가오는 시대, 인간이 세계의 새로움을 받아들여 자기 삶을 미처 정비하기도 전에 그 새로움이 이미 낡아버리는 세상을 정의한다. 베이징 국제도서전은 세계화와 정보기술로부터 밀려드는 ‘미래의 충격’을 중국 출판계가 어떻게 수용해서 도약의 계기로 삼으려 하는지를 보여 준다. 그렇다면 그 곁에서 한국 출판은 어떻게 갈 길을 잡아야 할 것인가. 깊게 고민하고 마음 써서 살필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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