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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정리한 출판의 네 가지 미래 흐름(문화일보)



참여 국가 111개국, 참여 출판사 7500곳, 기자 9900명, 출판 전문가 140,474명, 전체 관람객275,791명. 세계 출판의 최전선에서 함께 전투를 벌인 이들의 숫자이다. 부스 면적은 줄어들었지만 참여자는 오히려 늘었다. 세계 최대의 북 비즈니스 허브인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방문한 것은 세 해 만이다. 모바일 혁명과 전자책의 공습에 휘청거리던 전 세계 출판계는 그사이 자세를 다소 가다듬고 정신적, 문화적으로 ‘필요한 우아함’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행은 결정적이다. 출판의 새로운 사명은 ‘디지털의 거부’가 아니라 ‘디지털의 포용’에 뚜렷한 방점이 찍혀 있다. 이러한 글로벌 출판비즈니스의 흐름을 드러내는 강렬한 상징이 도서전의 부스 배치다. 독일권, 영미권, 유럽권, 아시아권 등 지역에 따른 배치는 점차 축소되고 요리책, 학습서, 그림책 등 주제를 중심으로, 전자책, 주문 출판(POD), 디지털교과서 등 비즈니스 모델을 중심으로 한 배치가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다. 이는 펭귄랜덤하우스, 하퍼콜린스, 아셰트 등 한 국가의 영역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초거대 출판 집단의 출현이 일상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서점을 연결망으로 하는 단순한 가치사슬에 의존하던 출판이 디지털 충격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분기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도서전 조직위는 작년부터 비즈니스클럽을 열어 디지털과 결합한 새로운 출판모델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글로벌 협업의 가능성을 늘리며 벤처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등 출판의 혁신을 계속 주도하려 애쓰는 중이다. 아울러 사업모델 별로 모은 부스 사이사이에 주변 관계자가 틈나는 대로 관련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할 수 있는 핫스팟 공간을 두어 전문가 대화를 활성화하고 있다. 여기서 나온 논의들은 “디지털 전략이 (출판의) 비즈니스 전략”이라는 한 문장의 선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전자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퍼콜린스 출판사의 최고 디지털 책임자 레스티보알레시가 말했듯, 기술은 출판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 덕분에 출판에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령, 팟캐스트나 유투브의 힘을 빌려서 성공한 출판사처럼 그 파도에 올라탈 것인가, 아니면 잠겨서 사라질 것인가는 각자의 몫일 뿐이다.

이번에 나온 출판의 미래에 관한 논의를 다시 몇 가지 흐름으로 크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출판의 본질은 큐레이션, 즉 좋은 콘텐츠의 선별이다. 영어권에서는 한 해에 이미 100만 종 이상 책이 출간된다. 디지털 콘텐츠까지 합치면 무한대 정보가 유통되는 중이고, 독자들은 읽기의 풍요 속에서 지쳐 있다. 따라서 《모노클》의 경우에서 보듯이, 출판은 콘텐츠 필터링을 통해 독자의 읽는 경험을 혁신하고, 그들의 열광을 일으키는 임무를 한층 더 엄밀하게 수행해야 한다.

둘째, ‘읽는 습관’을 만드는 일이 출판의 핵심 비즈니스다. 최신 통계에 따르면, 전자책을 읽는 사람은 종이책만 읽는 사람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전자책을 구독하는 사람은 종이책만 읽거나 전자책만 읽는 사람보다 더 많은 책을 구매한다. 디지털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한계비용제로사회에서는 독자들이 더 많이 읽고 싶어 하면, 그에 적합한 디지털 사업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작가, 출판사, 독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온오프라인에서 책과 독자를 연결하고, 저자와 출판사를 돕는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을 상상하고 실행하고 이를 장려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셋째,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유통사와 자가출판 플랫폼 등은 저자 또는 출판사가 전 세계에 흩어진 소수의 독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적으로 높인다. 글로벌리티(Globality)에 대한 고려는 이제는 출판 기획의 기본 요소로 올라서는 중이다. 특히, 자동번역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단문형 콘텐츠는 조만간 언어적 한계를 넘어서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자유롭게 유통될 것이다. 만화, 그래픽노블, 사진 에세이, 어린이책, 단편소설 같은 단문형 콘텐츠는 파도가 밀려들기 전에 먼저 기회를 잡아야 한다.

넷째, 책과 디지털이 만나면서 수많은 시도가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출판 산업 자체가 요동치는 중이다. 따라서 출판은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어떤 상황에도 콘텐츠를 공급하고 판매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Flexibility)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책의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워크플로를 개선하고 국제 표준을 준수하는 것이 필수다. 여러 콘텐츠 형식으로 변환하기 쉬운 포맷(XML)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마케팅에서 중요도가 커지는 메타데이터(Metadata)를 활용해 책의 발견성을 증진하며, 전자책, 오디오북, 비디오 강연, POD 등 독자가 원하면 콘텐츠를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형식으로 제공하는 가용성(Accessibility)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마력적인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 프로파일북스의 사장 앤드류 프랭클린이 말했듯, “길을 잃지 않고 좋은 책을 꾸준히” 출간하는 일이다. 책은 자체로 독립적인 미디어다. 다른 도움 없이도, 스스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 후에는 독자들이 책의 미디어로 바뀐다. 출판의 일은 그 기적이 일어나도록, 조금, 돕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