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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세상 소식

화성에 물이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왜 중요한가?(밝맑도서관 과학수다 강연)


한 달 전쯤, 두 후배가 지인들과 함께 찾아와 시골마을 도서관에서 과학 강연을 했다. 사이언스북스의 노의성과 프레시안의 강양구가 천문학자인 이명현, 물리학자인 김상욱 두 분과 함께 홍동밝맑도서관에서 ‘과학 수다’ 행사를 진행했다. 이 행사에서 사회를 보면서 몰려든 마을 사람들과 이어진 뜨거운 대화에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행사 때 이명현 선생이 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과학자들은 하나에서 둘로 바뀌는 순간에 주목합니다. 하나만 있을 때에는 모든 생각은 추정에 불과하지만, 둘로 바뀌는 순간 이론으로 성립합니다.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천체들 중에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갖춘 것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어떤 별은 유사도가 지구와 0.88 정도에 이릅니다. 만약 유사도가 1이 되면, 거기에 생명체가 있을 확률도 같은 정도로 높아질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외계생명체가 있음을 확신하지만, 아직 1에 이르지 않았기에 말을 아낄 뿐입니다.”

지난 한 달 사이에 화성에 물이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나사에서 발표를 했다. 물이 있는 천체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난 것이다. 이 발표는 일반인들한테는 아마도 호기심 천국 수준이겠지만, 과학자들한테는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나에서 둘로 나아갔고 비로소 이론이 현실로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날 강연을 듣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 발표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래에 그날 강연에 대한 프레시안의 기사를 옮겨둔다.




농사꾼과 과학자가 만나니 불꽃이 튀면서…

[과학 수다가 만나러 갑니다] 홍성군 밝맑 도서관


강양구 기자


요즘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네트워크 과학'의 개념 가운데 '링커(linker, 매개자)'가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오랫동안 과학기술 분야를 담당해온 나는 비교적 많은 수의 과학기술자를 알고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 담당 기자로서는 드물게 나는 환경 분야도 계속해서 담당해 왔다. 그 덕분에 생태주의자, 환경 운동가, 친환경 먹을거리를 나누는 협동조합 활동가, 지역의 농민 여럿과도 교류를 해왔다.

통상적으로 과학기술자와 생태주의자 혹은 농민이 직접 교류를 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즉, 대전에서 핵융합 에너지를 연구하는 과학자와 강원도 산촌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농민이 알고 지낼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 만약 이 둘이 모두 나를 안다면, 그 둘은 불과 두 단계의 가까운 사이가 된다.

바로 이렇게 접점이 있을 가능성이 낮은 두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사람, 이 경우에는 내가 바로 링커다. 지난 주말(19일) 이명현, 김상욱 두 과학자와 함께 충청남도 홍성을 찾을 때, 내심 생각한 나의 정체성도 바로 이 링커였다. 홍성군 홍동면의 밝맑 도서관은 프레시안, 사이언스북스, 알라딘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과학 수다가 만나러 갑니다’의 첫 번째 장소다.

홍성군 홍동면은 한국의 유기농 운동과 공동체 운동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과학기술에 유독 열광하는 한국의 평균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주로 과학 행사가 열리는 서울이나 수도권 도시와 비교하면 절대 인구수(약 4000명)도 적다. 밝맑 도서관에서의 강연을 기획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청중이 얼마나 모일지….”

쓸 데 없는 기우였다. 최근 밝맑 도서관에서 열렸던 어떤 행사보다도 청중이 많았다. 평소 도서관을 이용하는 홍동면 주민뿐만 아니라, 앳된 학생도 여럿 보였다. 국내 대안 학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인근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학생과 읍내의 홍성여자고등학교 학생도 보였다. 준비한 좌석이 꽉 차서 뒤에 서서 듣는 이들도 상당했다.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는 ‘하나와 둘 사이에서’라는 제목의 짧은 강연에서 과학자에게 하나와 둘이 어떤 차이인지를 설명했다. 현재까지 지구와 비슷한 정도를 표시하는 ‘유사 지구 지수’에서 가장 높은 외계 행성은 0.88을 기록한 케플러-438b다. 조만간 유사 지구 지수가 1인, 그러니까 지구와 모든 조건에서 똑같은 행성이 발견되면 어떻게 될까? 하나가 둘이 되는 순간!

이명현 박사의 강연을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부산대학교 교수)는 ‘둘과 셋 사이에서’라는 강연으로 맞받았다. “물리학자들이 숫자를 세는 방법은 ‘하나, 둘, 많다’입니다”로 말문을 연 김 박사는 놀랍게도 불과 30분(!) 동안 물리학의 핵심 개념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둘과 셋 사이에 물리적으로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부끄럽지만 <과학수다>의 저자 가운데 하나라는 이유로 나도 어쩔 수 없이 말을 보탰다. 제목은 ‘하이테크와 올드테크 사이에서.’ 강의 내내 분위기는 진지했고 (물론 가끔씩 웃음도 터져 나왔다!) 준비된 강연을 하고 나선 질문이 쇄도해서 애초 남은 시간에 셋이 ‘수다 쇼’를 보여주겠다는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사실 좀 더 특별한 일화는 몇 시간 뒤에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두 과학자가 각각 서울과 부산으로 돌아가고 나만 장은수 대표를 비롯한 주최 측과 협동조합 형태로 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홍동면의 술집에서 맥주를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일찌감치 자리 잡고 열띠게 대화를 나누던 저쪽의 여성 손님 몇 분이 잠시 동석을 요구했다.

알고 보니 그날 강연을 들었던 중학생을 자녀로 둔 홍동면의 어머니들이었다. 그들은 셋의 강연을 듣고 나서, 아이들에게 어떤 과학 지식을 어떻게 얼마나 전해야 할지 또 더 나아가서는 홍동면의 과학 문화를 놓고서 열띤 토론을 벌이다 눈에 띈 강사를 호출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계속된 갑론을박!

어쭙잖지만 나는 강연에서도 술자리에서도 ‘관심’을 강조했다. 우리 삶속 깊숙이 과학기술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그것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것의 좀 더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내가 과학자들과의 긴 수다를 요령 있게 정리해서 <과학 수다>(사이언스북스 펴냄)를 펴낸 까닭도 이것이었다고.

나의 그런 마음이 적어도 그날 현장에서는 통했던 듯하다. 그날은 밤늦게까지 홍동면 이곳저곳에서 과학 문화를 둘러싼 뭔가 다른 변화의 기운이 보였다. 그런 변화의 기운을 보면서 잠시 생각이 쓸 데 없이 다른 곳까지 미쳤다. 항상 신경이 쓰였던 네트워크 과학의 한계가 눈에 보인 것이다.

네트워크 과학은 연결망을 구성하는 ‘점(node)’을 말 그대로 추상화된 점처럼 간주한다. 하지만 현실의 연결망을 구성하는 점, 예를 들어 사람은 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마치 토요일 밝맑 도서관을 찾아가 대화를 나눈 (그러니까, 네트워크에 새롭게 연결된) 나를 포함한 세 사람 때문에 홍동면 사람들 각각과 그들이 구성한 네트워크가 잠시 동요했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링커를 자처한 나조차도 홍동면을 찾기 전과 후의 모습이 같지 않다. 홍동면에서는 정작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긴 했지만, 이틀간의 홍동면 방문으로 사람과 자연 그리고 그 둘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협동의 힘을 새삼 실감했다. 어느새 링커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어딘가가 홍동면 네트워크에 포섭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경험도 했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아침 늦게 나오니 밝맑 도서관 앞쪽, 애초 그물코 출판사가 있었던 책방으로 트럭을 몰고(!) 온 험상 굳은 남학생 셋이 들어갔다. '이 동네에도 무법자가!' 싶었는데 잠시 후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웃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이런 동네, 도대체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10월에 ‘과학 수다가 만나러 갑니다’는 강원도 정선의 시골 중학교를 찾아간다. 정선에서는 또 어떤 네트워크가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연결망에 접속되어, 그것을 흔들어 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