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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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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과 종교(필사에서 종교로, 금속활자에 대하여)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낼 만큼 오랜 출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 유럽 수도사의 일과가 성경을 베껴 쓰는 일과 기도로 이루어졌듯이, 고려의 승려도 경전을 직접 베껴 쓰며 사경을 제작했다. 필사의 전통에서 인쇄로의 전환은 세계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또 하나의 혁명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쇄 문화는 수도원과 사찰, 성경과 경전이라는 신앙 공간, 종교의 성전(聖典)을 매개로 꽃피었다. 대장경에는 불교의 성전이라는 신앙적 의미로서뿐 아니라 지식을 체계화하고 소통하고자 했던 인류의 지혜가 담겨 있다. 대장경판이 봉안된 해인사 장경판전은 진리를 향해 나아간 당대의 노력을 보여주는 거대한 도서관과 같다. (중략)필사의 방식에서 목판 인쇄로의 발전은 인류의 역사에서 결정적 장면 중 하나이다. 나..
편집자가 필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제 몸으로 하는 공부가 시대의 한 대세로 올라선 느낌이다. 단지 정보를 눈으로 읽어 받아들이고, 머리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드려 쏟아내는 일만으로 사람들은 헛헛할 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라고 썼다. 알에 둘러싸인 채 태어나서 껍데기를 깨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간절하고 안타까운 투쟁이야말로 인생에 진정한 활기를 불어넣는 행위다. 이 본능적 투쟁은 인간에게서 사라질 수 없다. 설령 잠시 약화되더라도 반드시 되돌아온다. 인간은 이러한 투쟁 없이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연결시대에 정보 폭풍 속에서 한없이 시들어진 인간 본성을 편집은 어떻게 책으로 가져와 다시 일으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