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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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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다 삼류 작가의 시시한 작품보다 거장의 걸작을 오해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린 시절, 루카치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깃발 아래 읽었던 발자크의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없었던가. 그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사상이 왕당파에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 핍진한 묘사 때문에 소설 내용이 ‘부르주아의 승리’라는 역사적 법칙의 엄중함에 따른다는 것만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려 들었다. 작품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관념들의 전개, 귀족 세력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상인 세력의 발흥, 그 갈피에서 오로직 역사 법칙에만 복무하는 듯한 인물의 행위들, 이런 독서는 결국 나의 발자크 읽기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나는 발자크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극도로 ..
카프카, 『그리운 친구여 ― 카프카의 편지 100선』(서용좌 옮김, 아인북스, 2011)를 읽다 카프카의 편지 모음집 『그리운 친구여 ― 카프카의 편지 100선』(서용좌 옮김, 아인북스, 2011)을 읽다. 1900년 김나지움에 다니던 열일곱 살 때부터 1924년 마흔한 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카프카는 수많은 편지를 썼다. 이 책은 독문학자 서용좌 교수가 그중 100편을 가려 뽑아 옮긴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에 그다지 큰 재미를 붙이지 못했지만, 어떤 오기로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문학에서는 위대한 사내였지만 일상에서는 그저 찌질한 남자에 소심한 불평쟁이에 지나지 않았던 카프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기쁨은 있었으나, 평생의 절친 막스 브로트를 비롯해 펠리체 바우어, 그레테 블로흐 등 카프카의 여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대개는 지나치게 사적이고 지엽적이어서 관련 정보가 그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