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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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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쨌거나 좀 더 살아야 해요.” ― 루쉰의 『고독자』를 읽다 루쉰의 소설은 이미 모두 여러 번 읽었지만, 손에 새로운 번역본이 들어올 때마다 어떻게든 다시 읽는다. 이번에 읽은 책은 『고독자』(이욱연 옮김, 문학동네, 2020)다. 이 판본은 2002년 인민출판사에서 특별 간행되었던 것으로 중국 현대 판화의 거장 자오옌넨이 새긴 목각 판화가 삽화로 실린 것이 특징이다. 『아Q정전』(2011), 『들풀』(2011), 『광인일기』(2014)에 이어 네 권째 나왔으며, 번역은 이번에도 이욱연 교수가 맡았다. 차후에 『옛이야기, 다시 쓰다』로 완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 실린 루쉰의 작품은 「복을 비는 제사」, 「비누」, 「장명등」, 「가오 선생」, 「고독자」, 「애도」, 「이혼」 등 일곱 편이다. 역자에 따르면,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 실린 작품 중에서 고른 ..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다 세월호 3주기 날입니다.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중앙선데이》에 4주마다 한 번씩 쓰는 칼럼. 문학과 슬픔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인류 최초의 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슬퍼하는 영웅 길가메시로부터, 『일리아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는 영웅 아킬레우스로부터, 「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과 그 처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여옥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문학의 기원에는 슬픔이 있습니다.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다 날이 풀렸다 싶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앞 냇가를 걷는다. 새벽 첫 빛에 어슴푸레 반짝이는 물살들. 물결이 가볍게 뒤척일 때마다 몸속에서 물이 함께 출렁인다. 푸석한 삶을 견디다 못해 물소..
[21세기 고전] 망각을 강요하는 권력과 싸우다 _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민음사) 한 인간의 죽음, 그중에서도 살인을 소설화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한 작가의 진정한 재능은 심지어 이 주제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느냐에 달려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살인으로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의 개연성을 온전히 구축하는 일만 해도 보통 난해한 일은 아니다. 재능 없는 작가들은 서사적 가치가 없는 우발로 처리하거나, 원한과 복수라는 흔해빠진 구조에 호소하거나, 사이코패스 같은 타고난 살인마를 출현시키는 등 삼류의 수법을 통해 살인의 이유를 독자들에게 떠넘기는 지적 태만을 보인다. 물론 그러한 태만에 속아 넘어가는 독자는 사실 거의 없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등 출판 당시의 사회적 주목 여부와 상관없이, 살인을 그려낸 작품 중에 시간의 시련을 이길 정도로 훌륭한 소설이 거의 드물지도 모른다.현실에서든 이야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또 읽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 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213쪽) 저녁에 노원인생학교 강의를 앞두고 어제 하루 종일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다시 읽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 찢어지는 슬픔..
담백한 글 『무미예찬』과 뜨거운 글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을 읽다 조금은 무기력한 주말이다. 안으로 밖으로 번잡한 생각이 많아 하루 종일 집중하기 어려웠다. 아침에는 『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 논어』(민음사, 2013)를 읽고, 한낮에는 정민 선생의 『우리 한시 300수』(김영사, 2014)를 읽고, 저녁에는 『괴테 시 전집』(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9)를 읽었으나, 한온(寒溫)을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인지 중년의 절정으로 치닫는 나이 탓인지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까지 YES 24에 보낼 글을 한 편 써야 하는데, 생각만 굴릴 뿐 손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인 번역서 한 권을 내는 문제로 새물결의 조형준 형과 대학로에서 만나 온갖 수다를 떨었다. 형은 뉴욕에서 두 해 정도 살다가 돌아온 지 열흘쯤 되었는데, 외국물을 길게 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