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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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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서평] 타인에 대한 ‘연민’ 없이 민주주의, 제대로 작동할까 _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 경이(驚異).놀랍고 신기하다. 감각이 깨어나고 몸이 풀리면서 상념이 융기한다. 문장들이 누적되고 페이지들이 모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낯선 지형을 머릿속에 만들어낸다. 이 지형도에는 ‘감정의 철학’ 또는 ‘감정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리라. 이성의 사유가 아직 제대로 개척하지 못한, 때로는 의도적으로 배척하고 때로는 처치 곤란으로 미루어둔 광대한 황무지. 마음의 지층으로 볼 때 이성보다 아래쪽을 이루면서도 여전히 어둠에 남겨진 영역. ‘감정’이라는 이름의 신대륙이 마침내 지적도를 얻었다.사흘에 걸쳐 1400쪽에 이르는 책을 모두 읽었다. 역시 마사 누스바움이다. 그녀의 책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시적 정의』, 『혐오와 수..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31일(금) 설이다. 새벽에 일어나 재계한 후 오전에는 제사 올리고 세배 치르고 아버지 유택에 참묘하느라, 오후에는 정체를 뚫고 다섯 시간에 걸쳐 대전 처가에 내려왔다. 몸이야 비록 고단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만나 쌓아 두지 않으면 가족, 친척 간의 인정도 금세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근대는 단단한 모든 것을 공중에 날려 버렸기에, 예절처럼 형태로써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극도의 어색함, 또는 심하게 말하면 적대감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심형일체(心形一體)의 뜻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의 지식에 가장 시급한 것일 수 있다. 처가에 도착해 잠시 동서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를 틈타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04)와 로버트 콜스의 『하버드 문학 강의』(정해영 옮김, ..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박용준 옮김, 궁리, 2013)를 읽다 올 가을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가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박용준 옮김, 궁리, 2013)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법 철학자로 정치 철학의 대가인 누스바움이 시카고 대학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법과 문학’이라는 강의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중심에는 “좋은 시민이 되는 데 왜 문학을 읽는 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누스바움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을 밑 텍스트로 삼아 이 질문에 뒤따르는 여러 문제를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풀어 간다.누스바움에 따르면, 문학의 힘은 독자들에게 타자의 삶에 대한 공감하도록 하는 능력에 있다. 나와는 다른 삶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그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것은 사회공동체 속에서 성숙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