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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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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지성 (보들레르) 오래전 나는 시인이 더할 바 없이 지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시인은 지성 그 자체이고, 상상력이 [정신의] 기능들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라고 한 적도 있다. 상상력만이 보편적 유추 또는 신비 종교에서 교감이라고 부르는 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_보들레르 =====아무렴!!! 시적 상상력이야말로 가장 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형태라는 걸 모른다면, 시를 쓰는 건 고사하고 읽을 수조차 없다.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2일(일)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 자연은 너무나 다양하며 특히 인간 본능과 성격에 관해서라면, 자연으로부터 그 관찰과 체험을 취하는 시인의 상상력에서 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다 삼류 작가의 시시한 작품보다 거장의 걸작을 오해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린 시절, 루카치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깃발 아래 읽었던 발자크의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없었던가. 그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사상이 왕당파에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 핍진한 묘사 때문에 소설 내용이 ‘부르주아의 승리’라는 역사적 법칙의 엄중함에 따른다는 것만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려 들었다. 작품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관념들의 전개, 귀족 세력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상인 세력의 발흥, 그 갈피에서 오로직 역사 법칙에만 복무하는 듯한 인물의 행위들, 이런 독서는 결국 나의 발자크 읽기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나는 발자크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극도로 ..
아니시 카푸어(Anish Kapoor) 전시회를 다녀와서 가을 들어 미술을 하고 싶어 하는 딸과 한 달에 한 번은 같이 미술관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려고 오늘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아니쉬 카푸어 전시회」에 다녀왔다.(Anish는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아니쉬가 아니라 아니시가 맞다. 외국 인명이나 지명, 상품명 등은 이런 큰 전시회를 열려면 한 번쯤 국립국어원에 자문해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학원 갔다 돌아올 시간을 기다렸다가 오후에 잠깐 다녀왔는데, 딸이 헤헤 웃으면서 함께 어울려 주어서 기분이 괜히 뿌듯했다. 리움 미술관 특별 전시실 두 층과 야외를 가득 메운 아니시 카푸어(Anish Kapoor, 1954~ )의 작품들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최근에 본 전시 중 가장 놀라운 체험이었다. 작품을 이루는 물질의 성질 자체를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