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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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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정치의 절망에서 문학의 희망으로 1830년 프랑스에서 7월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 직후, 서른한 살 청년 발자크는 깊은 고뇌에 사로잡힌다. 발자크 생각에, 가장 확실한 것이 불확실해졌다. 혁명 세력이 진보라 부르는 역사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 흐름이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향해 열린 것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돌아서지도 못하는 양난의 상황에서 발자크는 방황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공포정치,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에 이은 나폴레옹 집권, 혁명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잇따른 전쟁과 1815년 워털루 전투 패전으로 인한 나폴레옹 유배, 루이 18세의 복고 왕정과 특권을 유지하려는 귀족들의 폭정 등.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격동적이고 드라마틱한 ..
삶의 최고 기술을 엿보기 -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을 읽다 (1) 새벽에 일어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안인희 옮김, 유유, 2012)을 읽었다.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라는 부제가 알려 주듯이, 츠바이크가 쓴 몽테뉴 평전이다. 저자의 갑작스러운 자살 때문에 완결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현재 남은 부분만으로도 우리에게 읽는 즐거움과 생각거리를 충분하게 제공한다. 특히, 문장의 율동감이 느껴지는 깔끔한 번역으로 인해 더욱더 독서가 즐거운 일이 되었다. ‘역자 서문, 머리말, 1장 평민에서 귀족으로’까지 80여 쪽을 읽었는데, 전체의 절반쯤 된다. ‘머리말’이 특히 아름다웠다. 츠바이크는 ‘에세이’라는 글쓰기의 특별한 형식을 창조한 몽테뉴의 평생을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요약하고, 몽테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치의 광기’와 ‘제2차 ..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다 삼류 작가의 시시한 작품보다 거장의 걸작을 오해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린 시절, 루카치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깃발 아래 읽었던 발자크의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없었던가. 그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사상이 왕당파에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 핍진한 묘사 때문에 소설 내용이 ‘부르주아의 승리’라는 역사적 법칙의 엄중함에 따른다는 것만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려 들었다. 작품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관념들의 전개, 귀족 세력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상인 세력의 발흥, 그 갈피에서 오로직 역사 법칙에만 복무하는 듯한 인물의 행위들, 이런 독서는 결국 나의 발자크 읽기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나는 발자크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극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