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망각

(4)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다 세월호 3주기 날입니다.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중앙선데이》에 4주마다 한 번씩 쓰는 칼럼. 문학과 슬픔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인류 최초의 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슬퍼하는 영웅 길가메시로부터, 『일리아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는 영웅 아킬레우스로부터, 「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과 그 처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여옥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문학의 기원에는 슬픔이 있습니다.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다 날이 풀렸다 싶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앞 냇가를 걷는다. 새벽 첫 빛에 어슴푸레 반짝이는 물살들. 물결이 가볍게 뒤척일 때마다 몸속에서 물이 함께 출렁인다. 푸석한 삶을 견디다 못해 물소..
[21세기 고전] 망각을 강요하는 권력과 싸우다 _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민음사) 한 인간의 죽음, 그중에서도 살인을 소설화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한 작가의 진정한 재능은 심지어 이 주제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느냐에 달려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살인으로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의 개연성을 온전히 구축하는 일만 해도 보통 난해한 일은 아니다. 재능 없는 작가들은 서사적 가치가 없는 우발로 처리하거나, 원한과 복수라는 흔해빠진 구조에 호소하거나, 사이코패스 같은 타고난 살인마를 출현시키는 등 삼류의 수법을 통해 살인의 이유를 독자들에게 떠넘기는 지적 태만을 보인다. 물론 그러한 태만에 속아 넘어가는 독자는 사실 거의 없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등 출판 당시의 사회적 주목 여부와 상관없이, 살인을 그려낸 작품 중에 시간의 시련을 이길 정도로 훌륭한 소설이 거의 드물지도 모른다.현실에서든 이야기..
[문화일보 서평] 왜 어떤 일은 기억하고 어떤 일은 쉽게 잊을까 _다우어 드라이스마의 망각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표절 사건이 일어난 후, 소설가 신경숙이 그 일을 사실상 시인하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표현의 모호함 탓에 대중의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일상에서 무척 자주 일어난다.1970년 영국에서 유사한 표절사건이 벌어졌다. 고발된 사람은 조지 해리슨. 비틀즈의 멤버다. 그가 솔로로 발표한 곡 「나의 자비로운 신(My Sweet Lord)」이 여성 그룹 치폰스의 히트곡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He’s so fine)」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두 곡은 멜로디가 아주 비슷했다.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를 반주로 틀어놓고 「나의 자비로운 신」을 불러..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 김중혁 지음/문학과지성사 김중혁의 세 번째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문학과지성사, 2014)는 최근 한국 소설에서 기이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테마인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프라이버시의 자발적 유포에 의해 지탱되는 포스트 프라이버시 사회를 향해 무반성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한국 사회의 광적 열풍이 작가들의 예민한 무의식을 위협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범죄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범죄의 극적인 해결보다는 포스트프라이버시 사회의 기억과 망각이라는 사회철학적 문제를 사유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탐정물 특유의 지적 재미와 말초적 자극이 약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