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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열정/진화인류학 공부

고정관념

고정관념의 기원

 

인간에게는 마음의 눈으로 주변 환경을 최대한 깊고 넓게 탐색해 그 비밀을 해독하고 위험과 기회에 대처하는 데 유용한 심상 지도를 그리는 성향이 있다. 호모사피엔스한테는 진화를 통해 형성된 선천적, 보편적 성질, 즉 세계를 정돈하려는 성질이 있다. 우리는 강박적 의미 탐색자이다. (2-128쪽) 우리가 의미롭게 여기는 것들은 대부분 특정한 문화적 배경에서 우리 경험을 처리하는 통계적 능력에서 연유한다.

“사람들은 타고난 확률 전문가이자 통계 전문가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을 기억에 저장하고 그 빈도에 대한 대략적 통계를 계산한다.”

경험적 통계에 바탕을 두고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 “특정 조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을 자연스럽게 알아낸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하늘의 구름 모습과 색깔을 보면 비가 올지 안 올지를 예상한다. (중략

예측 가능성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그 편안함은 다양한 긍정적인 심리 상태와 연결된다. 반면에 자신만의 믿음과 기대에서 벗어나는 사건들은 일반적으로 긴장과 불안, 부정적 심리 상태를 유발한다.”(1-40~41)

이것이 고정관념의 기원이다. 우리는 개별 현상이나 사건의 다양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우리는 범주 지식을 얻고 그것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1-45)

 

고정관념의 기능

 

고정관념은 우리의 인지 자원을 아껴 주는 가장 효율적인 심리 기제이다. 인간은 일상에서 수많은 정보 처리와 의사 결정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중략) 모든 정보 처리는 인지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신체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활동이다. 정보의 신속하고 단순한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고정관념은 정보 처리에 필수적이다. (1-47~48쪽)

고정관념에는 범주 정보가 도식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단서가 노출되자마자 자동으로 관련 정보가 머릿속에서 활성화한다. 이러한 정보 처리 과정은 의식 영역 바깥에서, 즉 무의식적으로,  최소의 인지적 자원만 사용해서 일어나므로 매우 효율적이다. (1-48쪽)

더욱이 고정관념 정보는 그 정보를 적용하는 대상 인물에 대한 정보 처리뿐만 아니라 높은 효율성 덕분에 남은 인지 자원을 이용해 다른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것도 도와준다. (1~49쪽) 고정관념이 있으면, 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고정관념의 문제점

 

고정관념은 개인 또는 공동체의 경험에 통계적 범주 정보에 불과하다. 고정관념에는 ‘모두 그렇다’나 ‘당연히 그렇다’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그렇게 한정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또는 의식적 노력 없이는 한정해서 사용할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단지 그렇다(is)’라는 현상을 잘못 해석해서 당위(ought)로 오해하고, 그것이 옳고 동시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철학과 심리학에서는 ‘본질주의적 오류’라고 부른다. 사람들에게 ‘단지 그렇다’라는 단순 정보를 알려주면, 사람들은 그 정보에 ‘좋다’, ‘옳다’, ‘바람직하다’ 등의 가치를 부여하려는 성향이 있다. (1-39쪽) 

우리가 경험을 통해 형성하는 믿음(고정관념)은 일반화, 변별, 범주화 등의 과정을 거쳐 축약된 정보이다. (중략) 그러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믿음들은 절대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 본질상 고정관념의 성격을 띠고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중략) 일반화와 범주화의 과정에는 정보의 손실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1-42~43쪽) 한마디로, 고정관념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그 범주에 속하는 특정 집단 전체를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을 띤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단 고정관념 정보가 형성되면 각 개인에 대한 고유 정보가 주어져도 고정관념을 더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고정관념을 쓰지 말라고 해도 그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1-51쪽)

 

동기적 전략가

 

인간은 정보 처리 과정에서 ‘동기적 전략가’로 행동한다. “인간은 정보 처리 전략을 유연하게 선택한다. 주제의 중요성, 정보 처리 동기, 가용한 인지적 자원, 정보의 관련성/적합성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정보 처리 전략을 선택한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즉 메타인지 영역에서 일어난다.”(1-52쪽)

인간은 완벽한 정보처리자도 아니지만, 틀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일부러 틀리려고 하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항상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하려고 하거나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 인간의 정보 처리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 중 하나가 바로 ‘정확한 이해의 욕구’이다. 타인을 판단할 때 우리가 고정관념에 의존하든, 개인 고유정보를 사용하든 모두 그 타인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동기를 품고 있다. 설사 고정관념에 의존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일부러 잘못된 정보 처리를 하려는 고의성은 절대로 없다. 자신은 늘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 한다고 믿고, 실제로 그러고 있다고 생각한다. (1-51쪽)

하지만 매우 높은 수준의 확신이 요구되면 고정관념이든 개인 고유정보든 상관없이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사용한다. 반면에 판단에 대해 쉽게 확신이 들 때에는 최소의 노력으로 낮은 수준의 정보 처리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 자동적인 고정관념에 의한 정보 처리가 더 큰 영향을 발휘할 가망성이 높다. (1-52쪽) 의도적 판단 정지는 고정관념의 힘을 억제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 

 

결론

 

고정관념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고정관념 없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고정관념은 정보 처리에서 필수적이다.”(1-55쪽)

더욱이 “실제로 고정관념에 따른 정보 처리가 정확한 판단이나 결과를 이끌어 강화되는 경우도 흔하고, 심지어 일부 고정관념에 대해서는 그것이 맞는 경우가 틀리는 경우보다 더 흔할 수도 있다.”(1-53쪽)

문제는 타당성이 높은, 즉 현실적으로 정확한 고정관념일수록, 그 집단 구성원 중에 고정관념의 내용에 해당하는 정도와 비율이 높은 고정관념일수록 우리를 더욱더 본질주의적 오류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정관념을 둘러싼 문제는 고정관념의 타당성 문제나 그로 인한 판단의 정당성 문제가 아니라, 고정관념에 근거를 둔 정보 처리를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것, 즉 “범주 안에 있는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1-55쪽)이다.

고정관념 문제는 항상 다양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내집단보다 외집단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낮게 지각하고 상대적으로 외집단을 동질하게 지각하는 편향이 있다. 가령, 외국인을 보면 다 비슷해 보여서 누가 누구인지 잘 구분을 못 한다. (중략) 이러한 외집단 동질성은 고정관념을 그 집단 구성원들에게 쉽게 적용할 수 있게 만든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순간, 고정관념은 스스로 힘을 잃기 때문이다. (1-55쪽)

다양성을 거부하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고정관념이 틀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확률적으로 틀리지 않은 고정관념을 모든 사람에게 기대하고 요구하고 강요할 때 일어난다. 따라서 본래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는 본질주의적 오류를 상대적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동안 고정관념적 정보 처리가 방해받기 때문이다. (중략) 다양성은 더 많은 다양성을 이끄는 선순환을 이루어 낼 수 있다. (1-56쪽)

(1) 허태균, 「고정관념은 정확할수록 문제다」, 『다름과 어울림』(동아시아, 2021).

(2) 아자 가트, 『전쟁과 평화』, 이재만 옮김(교유서가, 2019).

 
 

고려대학교 다양성 위원회 기획, 『다름과 어울림』(동아시아, 2021).
아자 가트, 『전쟁과 평화』, 이재만 옮김(교유서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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