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애플에서 아이패드 미니와 아이패드 4를 내놓았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블로터닷넷의 정보라 기자와 간단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애플의 발표장에서 쓰인 한국어판 전자책은 민음사에서 만든 『위대한 개츠비』였습니다. 이를 간단히 축하한 후 정 기자의 질문은 “한국 업체들이 신기종 발표 때 스펙에 치중하는 것과 달리 애플은 왜 아이북스 등 콘텐츠에 치중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대답은 아래 기사에 나와 있습니다.
태블릿PC, 전자책 단말기로 매력 있나
2012.10.25
아이패드를 쓰며 ‘어디에다 써?’란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실 태블릿PC는 사용처를 또렷이 정하기 어려운 기기다. 동영상을 보고, 책을 읽고, e메일을 확인할 방법은 이미 널려 있다. 동영상을 찍어 공유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건 PC나 노트북으로 하면 더 정교하게 할 수 있다. 이동하면서 작업한다고 쳐도 노트북이 있다. 이게 무겁다면 스마트폰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태블릿PC 판매자는 ‘왜 사야 하는지’에 대해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쓸모 있는 제품이란 메시지부터 던져야 타사 제품과 기기 사양과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그래야 소비자가 살지 말지를 고민하지 않겠는가.
그 답을 들려주기 위해 팀 쿡 애플 CEO는 10월23일, 새 제품 기자간담회에서 앱스토어와 사진 스트리밍, 아이메시지, 전자책 등의 성적을 공개했다. 출시할 기기 소개는 그 다음이었다. 그중 전자책 앱 ‘아이북스’는 애플이 아이패드와 함께 내놓은 뒤 꾸준히 판올림하는 서비스다.
아이북스는 최근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 출시를 앞두고 출판사와 담합했다는 의혹을 받게 한 서비스이기도 하다. 이 송사에는 애플뿐 아니라 맥밀란, 펭귄그룹, 아셰뜨그룹, 사이먼앤슈스터, 등 세계적인 출판사도 얽혔다. 유통사의 경쟁을 막는 정가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미국에서 애플은 분명 출판사에 정가를 요구했다. 아이북스에서 더 싸게 팔거나 같은 값에 팔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애플은 왜 아이북스를 내놨을까. 그리고 아이패드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아이북스도 함께 판올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판올림한 아이북스3을 소개하며, 팀 쿡이 민음사가 아이북스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위대한 개츠비’를 예로 드는 모습.
혁신적인 제품도 결국 따라잡힌다…문제는 ‘콘텐츠’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스펙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짤막한 답을 내놨다. “기기의 진정한 가치는 스펙에서 나오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무엇’에서 나옵니다. 애플은 그걸 꾸준하게 홍보하고 있고요. 콘텐츠가 기기의 가치를 만든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게지요. 그래서 콘텐츠를 가장 잘 볼 수 있고,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란 걸 강조합니다.”
지금도 애플 새 제품은 여느 제품과 사양이 비교된다. 다른 제품도 마찬가지다. 각종 태블릿PC를 살 때 고려할 대목으로 화면 크기와 무게, 장착된 칩 종류, 용량, 메모리 크기, 해상도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점차 기기 사양이 상향 평준화하는 마당에 1g 차이가 문제일까. 제품간 가격차도 크지 않아, 가격 비교도 큰 고민거리는 아니다. 이미 사기로 마음 먹었다면, 끌리는 기기를 고르면 되는 것이다.
애플 7.9인치 아이패드 미니 16GB 와이파이 버전이 329달러, 32GB는 429달러, 64GB는 529달러다. 구글의 7인치 태블릿PC 넥서스7은 8GB 199달러, 16GB 249달러, 아마존의 7인치 태블릿PC 킨들파이어HD는 16GB 199달러, 32GB 249달러, 8.9인치 킨들파이어HD는 와이파이 버전이 299달러, LTE를 지원하는 제품이 499달러다.
이 다양한 선택지에서 소비자가 결국 고르는 것은 쓸모있는 제품이다. 출시 초기 사양이 형편없다는 얘기를 들은 아마존 킨들파이어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킨들파이어는 지금까지 약 700만대 팔렸다. 미주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영어 콘텐츠만 이용 가능하다는 한계에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경쟁하는 7인치 태블릿PC나 그보다 큰 태블릿PC와 비교해도 사양이 좋은 편이 아닌 점을 떠올리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킨들파이어는 기기 사양만 따지면 이해할 수 없는 성적을 기록했다. 이 제품은 2011년 9월, 7인치 태블릿PC로, 8GB 제품이 199달러에 소개됐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아마존 콘텐츠에 맞게 변형해 사용했다. 킨들파이어는 아마존이 서비스하는 전자책 ‘킨들’과 음악 ‘아마존 MP3 스토어’, 동영상 ‘아마존 인스턴트 무비’, 모바일 앱스토어 ‘아마존 앱스토어’ 전용 단말기다.
사실 위 4가지 콘텐츠는 아마존 외에도 구글 플레이, 애플 앱스토어와 아이튠즈 등에서 이용 가능하다. 그런데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건 전용 단말기라는 콘셉트 덕분으로 보인다.
성대훈 한국이퍼브 총괄이사는 “사용자는 자기가 즐기는 콘텐츠에 최적화한 기기를 소비한다”라고 이 현상을 진단했다. “아마존은 자사 제품군에 대한 규정을 명확하게 합니다. ‘킨들은 전자책, 킨들파이어는 게임과 동영상’ 등 콘텐츠를 잘 보여주는 디바이스라는 콘셉트입니다. 이와 달리 애플을 비롯한 제조사 쪽에서는 기기 사양을 먼저 제시하고, 거기에 적합한 콘텐츠를 보여주는 식이지요.”
음악, 영화, 사진 그리고 ‘책’
태블릿PC의 주요 업체는 태블릿PC 출시와 함께 전자책 서비스를 내놨다. 구글은 7인치 태블릿PC 넥서스7을 국내에 출시하기 전, 전자책 서비스를 먼저 내놨다. 국내 출판사, 유통사와 제휴해 구글 플레이 도서에 한국 책을 9월5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아이북스를 국내에서 정식 서비스하지 않으나, 아이패드 출시와 함께 아이북스를 내놨다. 삼성전자는 리더스허브라는 전자책 서비스와 함께 갤럭시탭을 2010년 출시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탭 출시를 앞두고 출판계를 찾기도 했다. 구글도 구글 플레이에 콘텐츠를 넣기 위해 국내 출판사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또한 아이북스를 준비하여 출판사와 논의했다. 마치 공식처럼 태블릿PC와 전자책이 묶여 나온 것이다.
장은수 대표는 “개인이 갖고 싶어하고 늘 접하는 건 책과 음악, 사진”이라며 “음악과 책, 영화 중에서 태블릿PC 크기의 화면에서 즐길 만한 건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이용 환경과 맞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태블릿PC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게 e메일과 인터넷, 책읽기 순”이라고 덧붙였다.
‘태블릿PC=책 읽는 기기’라는 메시지가 유독 7인치대 태블릿PC에서 강조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성대훈 이사는 “음악은 스마트폰에서 이용률이 높고, 화면 크기상 잡지나 책이 적당하다고 여겨졌는데 사실 10인치대는 애매했다”라며 “7인치대 태블릿PC는 휴대성이 담보되며, 적합한 디지털 콘텐츠로 단행본이 강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전자책 전용 단말기 시장을 태블릿PC가 파고드는 상황으로 볼 수 있겠다. 책 읽는 단말기로 음악을 듣고, 웹 서핑을 하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그 외에도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전자책 전용 단말기가 설 자리는 이제 없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패드 이후로 다양한 화면 크기를 가진 태블릿PC가 등장했다. 대부분 기기는 전자책 전용 서비스를 내놓았거나, 전자책 앱을 깔아 쓸 수 있다. 그런데도 아마존과 코보, 반스앤노블은 지난해와 올해 새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내놨다. 한국에서는 교보문고와 한국이퍼브가 새 e잉크 단말기를 출시했다.
성대훈 이사는 “사용자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 즐기는 콘텐츠가 가장 최적화한 기기를 소비한다”라고 말했다. 이 생각은 제조회사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팔 때 주는 메시지이지만, 한편으로 소비자가 단말기를 사는 이유이기도 하단 이야기다. 모든 걸 할 수 있는 똑똑한 기기이지만,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보여줘야 소비자의 선택을 얻을 수 있단 설명으로 풀이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있어도 최고의 음질로 음악을 듣고 싶다면 별도 전용 기기를 사고, 게임은 X박스를 쓰듯, 콘텐츠를 제대로 보고 효과적으로 이용할 디바이스를 찾기 마련입니다.”
장은수 대표는 애플의 제품군으로 이 이야기를 적용해, “애플은 음악은 아이팟에서 소비하고, 책과 같은 고급 콘텐츠는 아이패드로 소비하기를 바란다”라고 진단했다.
단골 신년 계획 ‘올해는 책읽자’, 태블릿PC 판매에 도움
이쯤에서 ‘내가 책을 그리 많이 읽던가’라는 의문이 든다. 태블릿PC 이용자면 애독자를 넘어 다독자인걸까. 이중호 북센 미래사업본부장은 “캐주얼 리더에게 전자책 전용 단말기보다 태블릿PC가 선호도가 더 높다”라며 “이 현상은 태블릿PC 가격이 내려가며 점차 퍼진다”라고 말했다.
“태블릿PC는 캐주얼 리더를 대상으로 합니다. 책을 한 달에 수권을 읽는 게 아니라, 친구가 추천해줘 한 번 읽거나, 충동적으로 구매해 보는 사람을 공략하는 게지요. 전자책을 많이 읽는 파워리더는 전용 단말기를 선호하고요.”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애플이 이번에 아이북스를 판올림하며 스크롤해 읽는 설정을 더한 게 이해가 간다. 아이북스3.0은 전자책을 넘겨 읽는 기능에 웹브라우저처럼 위아래로 죽 늘여 보여주고, 스크롤해 읽는 기능을 10월23일 넣었다.
전자책 전문 출판사 아이이펍의 김철범 대표는 “전자책을 넘겨 읽는 건 지금까지 종이책을 봐 온 이용자를 위한 UI, UX로, 책을 자주 읽지 않는 일반 이용자는 스크롤이 더 편할 것”이라며 “그동안 책을 읽는 이용자를 위한 전자책 서비스를 내놨다면, 스크롤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위한 새로운 전자책”이라고 평가했다.
성대훈 이사는 “아이북스에 스크롤 기능을 넣은 건 애플의 실수”라며 “아이북스를 전자책 서점보다 다양한 읽을거리를 보여주는 뷰어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블로터닷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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