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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밑줄과 반응 2012년 5월 27일(일)



1


삶에 찌들려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축제를 몰라요. 일하고 먹고 자는 게 그네들의 삶이죠. 사람은 그저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해요. 태어난 것도 축제, 결혼하고 사랑하고 죽는 것도 축제인데 그런 생각을 못해요. 


교육이 자연스러움을 제지하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행동을 버릇없다고 하고 예의 없다고 해요. 그래서 부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러움이 되어 버리죠.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할 때 부자연스러워지는 거예요.


교보문고에서 발행하는 책 잡지 《사람과 책》 2010년 6월호에 실린(16쪽) 홍신자의 인터뷰를 읽다가 마음에 담아 둔 글이다. 살다 보면 이렇게 오래전 잡지를 청소 등을 하다가 발견해 쭈그려앉아 읽다가 무릎을 치는 경우가 있다. 선(禪)의 화법들을 한없이 동경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경계하는 마음이 내게는 늘 있었는데, 그것은 현실에 매여 해탈하지 않으려는, 그러니까 부자유를 자연스러움으로 착각하는 어떤 심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은 1993년 출간될 당시 슈퍼 베스트셀러였지만 나는 이 책을 읽어 본 적은 없다. 당시에는 문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챙겨 읽기에도 바빴고, 편집자 생활을 계속 하게 될지 몰랐기에 서적 시장의 흐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 홍신자의 강렬한 춤사위가 담긴 표지 사진만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유를 위한 변명』을 썼던 계기와 근황 등을 담은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갑자기 홍신자가 내뿜는 내면의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솟았다. 스스로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를 위해 뛰쳐나가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섰던 사람에게는 범인들은 좇지 못할 다른 차원이 있다. 근래 책을 찾아서 한번 살펴 읽어야겠다.


자유를 위한 변명 

홍신자 지음/정신세계사


2

저는 예전에 단편소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독서가 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기 때문이죠. 물론 책을 읽는 것이 연기의 기술적인 것이나 방법적인 것에 직접 도움을 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사려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기를 하려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독서는 그 여유로움을 찾게 해 줍니다. (안성기)

책과 독서에 대한 글이나 말을 조금씩 모으고 있는데, 《사람과 책》(2010년 6월호)을 읽다 보니 영화배우 안성기 씨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 메모해 둔다. 그의 독서론이자 연기론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안희곤 선배가 하는 출판사 4월의 책에서 최근 안성기 씨에 대한 책을 한 권 낸 적이 있는데, 평소 워낙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해서 슬며시 그 내용이 궁금해진다. 


3

당신네들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번도 고객과 직접 대면한 적이 없고, 자기들의 책을 팔기 위해 서점을 만든 적도 없다. 당신들의 고객인 독자에 대한 데이터나 정보를 갖고 있지도 못하다. 시장도 당신들 자의적으로 재단할 뿐, 한번도 체계적인 조사를 해 본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제프 베조스)

당신들은 오랫동안 당신들에게 이익을 안겨 주는 독자를 당신들의 고객이라고 생각해 오지 않았다. 당신들의 고객은 저자와 서점이었다. 출판사 마케터들에게 '당신의 고객이 누구냐?'라고 물으면 서점이라고 해야 맞고, 에디터에게 물으면 저자가 나의 고객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이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 왔다. (22쪽) 

『편집자로 산다는 것』(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2)에서 가장 통렬하고 등뼈가 곧추 서는 부분은 아마 이 말들일 것이다. 독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엘리트적 출판관이 무너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또 독자가 저자나 출판사와 맺었던 종래의 관계를 곳곳에서 파기하고 직접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출판에서 밸류 체인의 마지막에 있으면서 그 중간의 모든 가치를 떠안은 독자에 대한 탐구는 제대로 시작되지도 못했다. 어느 산업이나 그렇지만 최종 소비자의 니즈(needs)를 파악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우며, 그것을 수요(demand)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이나 어려운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가끔씩 눙치면서 말했듯이, 소비자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실제로 잘 알지 못하거나 표현할 줄 모르기 때문에 독자를 이해하는 것은 출판사에게 수십 배로 힘든 고난의 행로를 요구한다. 독자 니즈를 편집자가 책을 내는 이유와 착각하고, 독자 수요를 출판사의 손익분기 부수와 혼동하는 글들은 이제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편집자들에게 미래의 출판 논의를 위한 작은 문턱을 제공한다. 그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 책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다.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불쑥 그런 생각이 들어 본격적인 글을 써 보기 전에 작게 기록해 둔다.

편집자로 산다는 것


김학원.정은숙.강주헌 외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